놀러와가 마련한 설 특집 세시봉 콘서트가 다시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놀러와가 놀라와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9월에 기록한 세시봉 첫 번째 특집이 시청률 18.9%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심야 시간대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다. 11시 20분에 시작해서 90분간 계속된 프로그램에 17%의 시청률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물론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네 사람의 힘이고,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로 오랜 갈증을 푼 시청자의 힘이었다.

이렇듯 놀러와의 연이은 히트에는 몇 가지 중요하고도 씁쓸한 내면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1일 방송된 세시봉 콘서트 2부 오프닝에 출연한 윤도현을 통해 은밀히 상징되는 것부터 말할 수 있다. 세시봉 특집이 이렇게까지 크게 된 것을 단순한 추억과 향수의 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 잘 배려된 잘 비벼진 고소한 비빔밥 같은 맛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씩 놀러와가 하고 있지만 이것을 매주 했던 프로가 있었다. 바로 윤도현의 러브레터다.

윤도현이 가진 정직함이 빚은 어떤 오래로 인해 없어진 이 러브레터는 놀러와가 한 것보다는 좀 더 콘서트와 음악의 색깔이 짙지만 어쨌든 주말 황금시간대의 음악프로가 외면하거나 놓친 <노래>와 사랑방 같은 이야기를 버무려 깊은 밤 아주 맛깔스러운 비빔밥을 차려냈다. 물론 지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김정은의 초콜릿이 비슷한 색깔이기는 하지만 러브레터와는 좀 다르다. 이야기를 하는 것과 대본을 읽는 것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시봉 콘서트가 성공한 데는 과거의 향수가 크게 작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유재석, 김원희 찰떡궁합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세시봉 네 가수의 노래와 잘 조화를 이룬 재미가 있었기에 성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 버라이어티란 말보다 흔한 말은 없지만 진정한 버라이어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1인 종합예술인 판소리가 그 증거다.

판소리가 현재 전해지는 것은 음악이란 장르지만 아마도 그 시원은 이야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도 없고 책조차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백성들이 노동 외 시간을 보낼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 바로 광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만 길게 하자니 지루한 감이 있어 그것에 민요가락 등을 얹어 노래화 시킨 것이 판소리의 기원이 된다. 그래서 판소리는 여전히 아니리라는 곡조 없는 이야기도 존재하고 있다. 판소리는 바로 노래와 이야기가 비벼진 한국 특유의 문화 현상이다.

세월이 바뀌고 대중의 취향도 엄청나게 변화했지만 민족성의 근간은 쉬이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세시봉 네 가수의 노래만 줄곧 180분을 듣기란 아무리 추억에 목마른 대중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시봉 네 명의 가수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에 활동을 시작했던 양희은, 이장희 그리고 이 시대의 젊은 가수 윤도현, 장기하를 같은 무대에 모이게 하고 또 그들로부터 전해지는 소담스러운 이야기들이 성찬을 이룬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의 감동은 거꾸로 우리 대중이 얼마나 진짜 노래와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노래에 대한 갈증이 더욱 클 것이다.

아이돌 댄스음악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 방송들의 너무 아이돌 의존도가 높은 것이 문제일 뿐이다. 세시봉이 아니더라도 노래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가수들은 많다. 불쑥 떠오르는 이름들만 생각해봐도 결코 세시봉 못지않을 가수들이다. 이문세, 이선희, 신승훈, 김건모,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가수들이며 지금 그들은 대중 가까이에 있지 않다. 대중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방송이 지레 그럴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의 노래,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방송을 통해서 대중들 가까이로 다가서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말 황금시간대의 음악프로는 젊은층에게 주더라도 더 많고 넓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더 많은 노래와 이야기들을 특집이 아니라 항상 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프닝 무대에서 윤도현을 보니 과거 그가 진행하던, 그래서 김제동이란 걸출한 인물도 발굴했던 러브레터가 그리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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