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시청자들을 아주 깊은 슬픔에 빠뜨렸던 목부장(김창완)이 역전의 여왕 종영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내와 딸과 아들을 아주 행복하게 만난 자리에서 노래 한 곡을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연장 드라마가 대개 그렇듯이 모두 모두 해피한 결말로 몰아가는 과정에 그 동안 역전의 여왕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목부장은 아주 아름답게, 아름다운 만큼 더욱 슬픈 여운을 남기고 한발 먼저 드라마를 떠났다.

퀸즈의 사장을 결정하는 주주총회에 마침내 구용식과 한송이가 후보로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절대적으로 구용식에게 불리하다. 한송이를 지지하는 구용식의 이복형의 주식지분이 이미 과반수를 넘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용식의 아버지는 주주총회를 열었고 구용식의 역전은 백여진이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한송이 엑스 파일의 존재로 인해 자진사퇴로 이뤄졌다.

구용식의 역전은 그래서 특별히 짜릿하거나 극적인 면도 없었다. 야박하게 보자면 개연성이 확보되지 못했고, 누군가 가져다준 것이기에 딱히 역전의 묘미도 누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결말은 지어야 했고 역전의 여왕이 달려온 방향이었던 구용식의 승리는 필수였으나 필연을 자연스럽게 구성치는 못했다. 그런 어정쩡한 승리 아니 결말을 가려주고 종영의 분위기를 인상짓게 해준 것 목부장의 죽음이었다.

특히 김창완이 산울림 시절 불렀던 초야를 떨어져 지냈던 가족 그리고 동료 앞에서 부르는 모습은 목부장으로서도 딱이었고, 산울림의 김창완의 모습도 그대로인 소탈하고 맑은 장면이었다. 노래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데 그 상황으로 인해 참 아름답고 슬픈 노래가 되었다. 나름 산울림 팬이라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노래 초야를 그래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그리고 역전의 여왕이 끝난 후 열린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로 인해서 이래저래 1월의 마지막 밤은 다소 오래전 노래들의 감성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

보는 이에 따라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역전의 여왕 최고의 연기는 김창완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의 김창완을 가수라고 해야 할지, 배우라고 해야 할지 머뭇거리게 되는데 어쨌든 죽음을 앞둔 인간으로서 가장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 가족을 위해서 고통과 고독을 모두 숨기고 그의 처절한 사투는 매번 큰 감동을 주었다.

죽음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정리해고자가 되는 이중고에 몇 푼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집을 정리하고 회사 숙직실을 전전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과 통화하면서 눈물을 씹어 삼키는 그의 모습은 절절하게 시청자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그런가 하면 그와 함께 특별기획팀 아니 정리해고자 동료인 유경을 위해서는 지하철 안에서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그 일을 계기로 세상에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던 유경을 적극적인 회사원으로 변신할 수 있게 했다. 그의 그런 지하철 독백은 역시나 큰 감동이었다.

자신의 절망과 고통을 이타적으로 전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역전의 여황은 그동안 황태희를 향한 구용식의 멋진 구애의 방식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그것이 사탕키스만큼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로맨틱 연출의 힘이 대단히 느껴지는 장면들은 아주 많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치더라도 목부장 김창완이 보인 몇 번의 감동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복부장의 에피소드는 역전의 여왕의 전체 흐름에 아주 잘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다소 이질적인 요소도 없지 않지만 죽음과 싸우는 목부장의 가족애라는 당연한 듯 처절한 모습의 절실함이 아무것도 따지지 못할 큰 의미와 감동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었다. 그리고 구용식이 사장이 됨으로 해서 정리해고자 모두가 구제받을 수 있는 그 터닝포인트 시점에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노래 하나 남겨두고. 참 아름다운 죽음이었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어 그에게도, 그의 가족에게도 그리고 시청자에게도 아주 선한 마침표를 찍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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