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euthanasia 안락사, 그리스어 ευθανασία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이라는 뜻이다. EIDF 2019(제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토마스 크루파 감독의 <우아한 죽음>의 원제는 The good death, 안락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락사,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 본인 혹은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다. 안락사는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더 이상의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공급, 약물 투여를 중단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소극적 존엄사, 그리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사람이 불치병의 환자 등을 대상으로 환자의 삶을 단축시킬 것을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하는 적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불법'으로 다뤄진다. <우아한 죽음>은 바로 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또 하나의 선택지로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 다큐는 설득한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해주옵소서

[제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 <우아한 죽음> 스틸컷

자넷 버틀린, 1944년 6월 23일생으로 2016년 당시 72세였다. 두 번의 결혼, 그리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앓았던 근위축증이 그녀를 찾아왔다. 불행히도 이 병은 유전이라, 그녀는 아들에게도 그 병을 물려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들에게 자식이 없어 더 이상 그 불행한 유전을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근위축증으로 자넷의 어머니는 30년 동안 온종일 의자에 앉아 투병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넷은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머니의 고통은 자넷에게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간다. 2년 전만 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던 자넷. 하지만 이젠 잠자리에서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걸 자넷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목발에 의지해야 움직일 수 있는 삶,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게 공허하다고 판단한 자넷은 자발적인 안락사를 선택한다. 자신에게 의식이 있을 때 삶을 스스로 정리하겠다는 것.

하지만 자발적인 안락사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녀가 사는 영국은 자발적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지역 보건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영국 현실에서 보건의는 자넷의 결정을 ‘노인성 우울증’이라 여기며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 위탁을 하려고 한다.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 결국 자넷은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에게 정신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제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 <우아한 죽음> 스틸컷

자식들은 엄마의 결정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녀가 결정을 미룰 것을 종용한다. 딸은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결혼식까지 미뤄주면 안 되겠냐면서 정해지지도 않은 결혼식 핑계를 댄다. 아들과 딸은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려는 그녀와 동행을 핑계로 차를 대절하여 어머니의 맘이 바뀔 계제를 노린다. 우선은 가서 그저 한번 알아만 보자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요양병원에 있는 남편은 기꺼이 그녀의 선택을 존중, 눈물로 그들의 이별을 감수한다. 신이 준 생명을 마음대로 끝내는 건 안 된다는 사람부터, 늘 그녀에게 의지해왔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을 위해 아들이 사는 미국으로 살러 간다는 여러 번의 거짓말까지 그녀가 죽음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결정을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고통 속에서 계속 삶을 견뎌 가는 게 용기라며 자신은 쉬운 길을, 편하게 죽음을 선택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제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 <우아한 죽음> 스틸컷

어렵사리 영국을 떠나 스위스에 도착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해줄 '라이프 서클'의 의사를 만났다. 오랫동안 메일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왔던 두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동지처럼 포옹을 나눈다.

자넷을 죽음으로 인도할 의사는 일주일에 단 2명만 안락사를 시행한다고 한다. 제아무리 신념에 따라 행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의 짐을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직에 임하는 그녀가 안락사라는 '숙명'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을까.

기독교적 신앙이 투철했던 집안. 하지만 두 번의 뇌졸중으로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계속 자살 시도를 했다. 약을 먹고 기차에 뛰어들었던 아버지. 종교적 신념이 지극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안락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물론 말기암 환자에게 진통제를 통하여 고통을 감소시키듯 안락사라는 극단적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적으론 병으로 인한 고통조차 신 앞에 인간이 감내해야 할 ‘시련’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반문한다. 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과연 신에 의한 것이냐고. 심장 마비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를 사람을 소생시키고 있지 않냐고. 외려 오늘날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어갈 수도 있는 순간을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녀와 그녀가 소속된 '라이프 서클'은 스위스를 넘어 더 많은 나라에서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안락사가 누구에게나 행해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안락사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왜 자신이 그런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악화를 막을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한다.

딸은 마지막까지 엄마를 설득해 본다. 엄마를 존중하지만 안락사가 아니라도 엄마가 삶의 질을 누리며 투병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6개월 후에 다시 올 수 있다고 멋진 차를 불러 타고 돌아가자고 제안을 한다.

To be or not to be,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제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 <우아한 죽음> 포스터

하지만 자넷은 이런 과정이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담담하게 결론을 내린다. 지난 시간 동안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엄청 애를 써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그녀가 도달한 삶의 현실이라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고. 정말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직도 알고 싶은 게 많다고.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다시금 되물어진 질문. 수면 마취 후 4분 내에 신부전이 올 수 있는 약물을 투입한다. 그리고 '2016년 9월 22일 자넷 버틀리는 운명하셨습니다'.

자넷은 자신의 유골조차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그녀를 기리고 싶었던 자식들은 그녀의 유골함을 가지고 가 그녀가 오래도록 애지중지 가꿨던 오래된 정원에 뿌린다.

어머니의 죽음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이게 최선일까 의구심은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던 아들.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해서 신념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던 그에게 자신과 같은 병으로 '안락사'를 선택한 어머니의 결정은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재혼으로 오랫동안 어머니와 적조했던, 그러나 바로 그 어머니에게서 근위축증을 물려받은 아들은 스스로 근위축증 실험실을 만들었다. 1A형 지대형 근위축증, 근막을 지탱해줄 단백질이 손상되며 근육이 점점 무력해지는 이 불치병.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그의 실험을 시작으로 뱀독과 같은 카디오톡신을 주입하여 근육재생능력을 향상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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