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보수신문과 경제지들의 ‘화려한 변신’이.
적어도 지금까지의 논조대로라면 노사간 대타협을 이끈 현대자동차 경영진을 향해 ‘질타’의 목소리를 날렸어야 했다. 그리고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임금 인상과 같은 ‘안’을 관철시킨 노조에게는 비난의 강도를 높여야 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5일자 동아 조선일보를 비롯해 대다수 경제지들이 이번 현대자동차 임단협을 ‘상생의 악수’ ‘상생의 노동운동 새 지평을 열었다’는 식으로 ‘극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본급 대비 5.79% 인상에 성과급 300% 지급 △일시금 200만원 지급 △상여금 750% 지급 △정년 1년 연장 (58세에서 59세로) 등이 현대차 노사가 잠정 합의한 내용이다.
보수신문과 경제지들이 환골탈태를 한 것일까.
국민일보와 중앙일보가 차라리 더 솔직하다
단정은 금물이다. 논조가 바뀌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다. 그 배경을 짚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일보와 중앙일보는 지금까지 보인 ‘노선’을 바탕으로 이번 노사합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할 말을 한’ 셈이다. 잠깐 감상해보자.
“현대자동차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없이 임단협을 잠정 타결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을 위해 회사 측은 ‘경영권 침해 소지가 있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던 노조의 지나친 요구까지 일부 수용하는 대가를 치렀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지나친 양보가 회사 발전의 발목을 잡는 데다, 다른 노사 협상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 같은 날짜 6면 ‘현대차 무파업 비싼 대가’ 중에서)
동아 조선 그리고 경제지들의 ‘화려한 변신’ 어떻게 볼 것인가
경제신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위기극복 걸림돌 치웠다>(매일경제 9월5일자 5면) <‘상생의 노동운동’ 새지평 연 획기적 전기>(서울경제 같은 날짜 3면) <현대차 노사상생 ‘새장’>(파이낸셜뉴스 같은 날짜 1면) <파업 악순환 고리 끊고 ‘상생의 역사’ 썼다>(한국경제 같은 날짜 3면) 등 대부분 긍정 일색이다. 사측은 성실교섭을 노조는 파업자제를 통해 노사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가장 많다.
난센스다. 사실 이번 현대차 노사간 임단협이 타결된 결정적 계기는 사측의 태도에 있었다. “밀고 당기기 협상을 벌이지 말자”며 협상 초부터 노조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제안을 계속해서 내놓았고, “노조도 명분이 있어야 조합원들을 설득할 것 아니냐”는 ‘배려’까지 해주는 태도를 보이는 등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 때문이라면
만약 사측이 이 같은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면 과연 무분규 타결이라는 결과를 맺을 수 있었을까. 단정은 이르지만 가능성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럼 왜일까. 왜 사측은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며 협상타결에 ‘올인’했던 걸까.
그렇다면 관심을 모으는 것은 동아 조선과 경제신문들의 바뀐 태도다. 파업에 따른 ‘부담’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차의 입장이고 그 부담과 상관이 없는 이들 언론의 태도는 도무지 종잡을 수도 없고 이해 또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나 중앙일보처럼 협상 타결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협상 타결 기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선고공판 관련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동아 조선과 경제신문들의 공통점이다. 정몽구 회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논조의 변화도 불사하겠다는 것일까. 아무튼 이들의 ‘변화’는 정말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