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의 망가짐은 약과였다. 말똥에 얼굴을 박고, 테이블에 넘친 맥주를 거침없이 빨대로 후르륵거리면 마신다. 그뿐 아니라 말의 성기까지도 노골적으로 바라본다. 소위 여신급 미모를 가졌지만 불행하게도 연기력의 부재로 구설수에 올랐던 이연희도 오랜 발연기의 수모를 벗어났다. 이미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가 망가짐으로 길을 열었고 이연희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아니 김태희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더 독하게 망가졌다.

동방신기 창민과 함께 출연하는 파라다이스 목장은 얼핏 작년 윤호와 아라가 주연을 맡아 죽을 쑨 <맨땅에 헤딩>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아이돌 가수와 얼굴 예쁜 배우. 그러나 24일 시작된 파라다이스 목장의 이연희는 더 이상 <에덴의 동쪽>의 그 이연희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캐릭터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표현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굳이 얼굴에 말똥을 칠갑하지 않았어도 이연희의 달라진 모습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사와 표정 그리고 그것들을 결정하는 호흡에 있어서 아직은 명연기라고 하기에는 성급하겠지만 적어도 발연기라는 수치스러운 말을 들을 일은 아예 없어보였다. 제주도의 그림 같은 목장에서 아버지와 여동생과 사는 이다지 역을 맡은 이연희의 나이는 25살. 어릴 적 천재로 국비 장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으나 사랑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 모든 걸 포기하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헤어진 이혼녀가 됐다. 그 후 수의사가 되어 제주도의 말들을 보살피며 구김살 없이 밝게 살아가고 있다.

한편 동방신기의 창민은 이연희와 헤어진 재벌가의 3세다. 분명 유노윤호보다는 무난한 출발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이 아닌 연기자로 봐줄 정도는 아니다.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는 후한 점수를 줘도 무방하겠지만 연기자 주상욱과 나란히 서서 연기를 할 때에는 그 존재감에서 위축되는 점은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보통 아이돌이 연기를 할 때 엉망진창의 발연기를 보면서 겪는 조마조마함은 없을 정도는 되니 일단 스타트는 나쁘지 않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대부분 성공한 사례를 들어 파라다이스 목장도 그런 제주도의 선한 징크스의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한다. 이다지 캐릭터 묘사에 대부분을 할애한 파라다이스 목장 첫 회였다. 마이 프린세스처럼 파라디이스 목장 역시 이연희의 원맨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의 이연희라면 대단히 무모한 설정이겠지만 첫 회 만큼만 해준다면 철부지 돌싱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 파라다이스 목장은 충분히 성공 가능성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 말고는 모든 남자를 아저씨라 부르는 이다지는 얼굴을 문지르면 잉크가 묻어날 것만 같은 순정만화에서 바로 꺼내온 듯한 캐릭터다. 이연희라 더욱 합목적적인 캐릭터다.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지만 제주의 청정한 하늘처럼 맑게 살아가는 여자다. 거기다가 이혼 후 아버지와 지문이 닳도록 황무지를 일궈 가꾼 목장마저도 사기를 당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다지는 천성적인 밝음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다지는 문법적 형태소로 부사다. 감탄사가 될 수도 있다. 감탄사는 두 가지가 있다. 파라다이스 목장의 이다지가 기쁨과 즐거움의 감탄사가 될 가능성은 많아 보인다. 살아있는 인형 같이 생겨서 지금까지 인형처럼 연기했던 이연희가 비로소 사람의 피가 도는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다지가 이다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듣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다지가 이다지가 될지 그다지가 될지는 이연희에게 달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