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 단행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도 피해보다는 오히려 한국 기업들의 탈일본화 계기를 마련해주는 긍정(?)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다급해진 것은 한국기업, 특히 세계 반도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 SK 등에 소재를 수출하던 일본 기업들이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향해 도발을 해온 직접적인 원인은 강제징용노동자에 대한 배상판결이었다. 동시에 법원판결에 개입해달라는 일본 정부의 간섭을 전과 달리 받아주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앙갚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한일 간의 경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결과가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똘똘 뭉친 의지에 유니클로 등 대표적인 일본 기업들은 곤경에 처하고, 한국 관광객들로 붐볐던 일본 중소도시의 거리는 한산해졌다. 한국인 관광객은 받지 않겠다던 콧대 높은 대마도 상인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한국은 금세 뜨거워졌다 식는다고 조소하던 일본의 얼굴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뿐 아니다. 삼성을 찾은 일본 반도체 소재업체는 자신들이 일본 정부를 설득할 테니 거래를 유지해달라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일본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대두되며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가 졸렬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려온다. 늦어도 너무 늦은 자성이어서 탈일본화 레일을 탄 한국기업이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상황이다.

아베 정권이 이런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론 일본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에 대해 매우 편협한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때보다 반일 의식이 고취될 수밖에 없는 8·15를 목전에 두고 한국을 향한 도발을 강행한 것은 허술하다고 느낄 정도로 무모했다.

아베 정권의 도발은 처음부터 카미카제식이었다. 일본 기업들의 만만치 않을 피해를 감수하면서 시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가 더 곤란해질 것이라는 계산서가 없었다면 일본의 도발은 카미카제가 아니라 그저 자살행위 불과한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작년 10월 사이타마 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베의 일본이 꿈꾸는 군국주의 일본, 전쟁하는 일본은 이미 패전의 경험을 안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해온 아베는 다시 말하자면 패배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10월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불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전략도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 모두가 의미를 잃게 된다. 상황은 아베 정권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일본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로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시민들의 일본 불매운동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무관하게 시작된 것인 만큼 한일 정부의 협상과 별개로 이미 충분히 각성된 시민들의 일본 불매운동은 쉬이 꺼지지 않을 불길로 커졌다.

아베는 이기지 못할 싸움을 걸어왔다. 더군다나 광복절을 맞는 한국에 대한 도발은 무모했다. 8월 15일에는 누구나 독립투사가 되는 한국인을 너무 쉽게 봤다. 아베는 한국 시민의 힘, 촛불의 저력을 가진 그 힘에 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지만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