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우리 객원기자] ‘약 35kg이 넘는 리얼돌을 일으켜 세운 이 대표의 이마에는 금세 땀이 맺혔다.’

지난달 대법원 ‘리얼돌’ 소송에서 승소한 성인용품 업체 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묘사된 모습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증거로 제출된 리얼돌 제품 ‘사양’도 159cm, 35kg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인터뷰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성 소외자) 그분들이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과 여성단체서 주장하는 인권침해 등을 비교하면 오히려 행복추구권이 앞선다고 본다.”

앞뒤가 안 맞는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리얼돌을 옮기는 데만 해도 금세 땀이 맺히는데 장애인이나 노인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까? 하물며 옮긴 뒤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어떻겠는가? 더 큰 문제점은 리얼돌의 가격대다. 향후 가격이 내려갈 것을 감안해도 최소 100만 원 대의 고가 제품이다. 성 소외자들이 리얼돌의 실구매자일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 소외자로 대표적으로 호명되는 이들은 독거인, 노인, 장애인이다. 성 소외자는 많은 경우 사회적 소외자다. 성 이전에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나 권리부터 소외된 경우가 많다. 특히 장애인은 성매매 합법화 이슈 때도 성 소외자로 빠지지 않고 호명되곤 하는데, 역시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 외쳤던 장애인 지하철 이동권 문제, 특수학교 설립 교육권 문제는 외면받았었는데 (그러한 권리들이 뒷받침되는) 성욕만 뚝 떼놓고 갑자기 챙기는 듯, 제1 기본권이자 제1 욕망인 듯 챙기려 할까? 무엇보다 여성 독거인, 여성 노인, 여성 장애인의 성욕 또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이만큼 이야기된 적이 없었다.

연합뉴스TV 뉴스화면 캡처

리얼돌 논란, 그러니까 남성 성욕 해소 담론에서 성 소외자는 핵심이 아니다(기혼 남성들의 높은 성매매율만 봐도 그렇다). 사회적 소외자들의 외로움을 해소하자며 리얼돌 자식, 리얼돌 부모, 리얼돌 친구를 만들자고 하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왜 남성의 성욕 해소에 리얼돌이 필요한가’이다. 정확히 말해 리얼돌의 ‘얼굴’이 왜 필요할까. 여성용 성인용품은 언뜻 보면 성인용품임을 알아보기 어려운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반면 남성용은 av 배우 얼굴, 2d 캐릭터 얼굴… 여성 얼굴투성이다. 이 얼굴에는 간호사, 경찰관이라는 직업 정체성이나 성격 등의 신상 정보가 함께 맞물려 기재된 경우가 많다.

얼굴의 가장 큰 특징은 인격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 인격과 소통하기보다 대상화하고 모욕하는 것이 남성 성욕일 때가 많지 않은가? 술에 취한 여성, 약물을 타 먹인 여성에게 ‘골뱅이’라고 부르며 의식 없는 여성에 대한 강간욕을 성욕이라 부르는 남성들.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않은 관계를 강간이 아닌 섹스라고 부르는 남성들. 성욕이 해소되지 않으면 강간율이 올라간다는 남성들. 이러한 남성 성욕의 증상이자 물화된 형태가 리얼돌인 것이다.

리얼돌은 어차피 소수만 이용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 어떤 서양인이 ‘눈이 찢어진’ 동양인 인형을 만들면 일부라서 상관이 없을까? 리얼돌도 같은 문제다. 여성 상징 일반을 담고 있어서 문제다. 그리고 리얼(한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항상 흘러넘치고 서로를 침투한다. 아니, 오히려 현실이 리얼(한 가상)에게 지배된다는 점은 철학 개념 ‘시뮬라시옹(Simulation)’까지 찾지 않아도 익숙한 현상 아닌가. 리얼돌은 가상의 여성이지만 실제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여성들은 리얼돌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두려움에 대해 일부 남성은 질투라고 주장한다(그들이야말로 크고 사양 좋은 여성용 성인용품에 질투한다는 것을 비밀로 해 두자). 질투의 감정은 그 질투의 대상이 나와 경쟁할 만한, 동등한 지위의 주체라는 인식에서 온다. 그런데 리얼돌이 과연 여성과 동등한 주체인가? 오히려 리얼돌과 여성을 동등한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질투 운운하는 남성들 아닌가? 오나홀과 여자친구를 비교하며 투자 대비 성욕 해소 ‘가성비’ 따지는 인터넷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리얼돌을 두고 ‘불쾌한 골짜기(인간과 닮은 로봇 등에 느끼는 불쾌감)’를 느껴 별로라는 남성들도 있다. 여성들에게는 이 사회 전체가 불쾌한 골짜기다. 사람인데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과 웹하드카르텔 문제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은 일상에서 성적 대상화와 성폭력이라는 인형의 상태에 노출되며 성적으로 이중, 삼중의 소외에 놓여 있다. 이런 사회에서 제작되고 유통되는 리얼돌은 여성들의 성적 대상화와 소외를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이 모든 맥락을 잘라낸 “리얼돌이 타인에게 무슨 피해를 주죠”라는 성인용품 수입업자의 ‘항변’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리얼돌은 곧 지인 얼굴까지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베니스의 상인 재판을 맡았던 재판관에게 이번 리얼돌 판결을 맡기면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샤일록, 여성들에게서 35kg의 리얼함만 도려내되 단 한 방울의 인격이라도 빼앗아서는 안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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