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귀국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공항 패션만으로 이처럼 뜨거운 대중적 '관심'을 일으킨 것은. 청바지에 검정 점퍼 다소 독특해 보이긴 했지만 그리 값있어 보이지는 않던 비니를 눌러쓴 그의 패션이 이처럼 화제가 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 했다. 5개월 여 만에 귀국한 신정환에 대한 언론의, 네티즌의 관심은 그 관심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두텁고, 뜨겁다.

▲ 지난 19일 5개월 여만에 귀국한 신정환 씨와 그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연합뉴스
신정환은 '많이 혼나겠다'는 짤막한 심경을 밝혔다. 외환관리법 위반, 여권법 위반 등의 혐의 의혹들이 그를 휘감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죄목의 죄인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그리고 그 사랑이 곧 수입으로 환원되는 직업을 갖고 있던 이가 도박을 과하게 했다는 것이 이처럼 저잣거리에 사람을 내걸고 돌팔매질을 해야 하는 문제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다만, 이미 그는 가진 것의 거의 전부를 잃었고, 충분히 혼났다.

사실, 그가 무슨 옷을 입었느냐 그 옷이 명품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리가 아프다던 그가 휠체어를 탔다면 그걸 또 문제 삼았을 것이고, 네팔에 머물렀다던 그가 네팔의 어느 거리에서 샀음직한 허름한 옷을 걸치고 귀국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테다.

유례없는 명품 공화국, 도시인의 욕망이 백화점 1층 쇼윈도를 향해 정렬해 있는 나라에서 신정환의 명품패션 논란은 차라리 우스운 역설이다. 4대강을 삽질해 그 강물 위에 카지노 유람선을 띄우자고 해도, 이럴 바엔 '연평도에 카지노를 짓자'는 제안이 유력 일간지 논설위원의 기명 칼럼으로 실려도 '그러려니' 하는 사회에서 한 연예인이 '과다한 바카라 도박'을 했단 것만큼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도 비루한 농담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신정환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불타는 적개들을 지켜보면, 이 비난의 소용돌이가 또 무엇을 쓸어갈 것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본주의가 떠안긴 스트레스와 천박의 최첨단을 내달리는 상업주의가 남긴 상처를 이유로 언젠가부터 우린 누군가를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는 야수로 돌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그 막연한 두근거림이 아니라 우리 안의 야수가 길들여지는 방식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총천연색 부패에는 기꺼이 눈을 감은 채 신정환을 뜯고 있는 언론과 네티즌의 두텁고 뜨거운 분노는 정말 살 떨리는 광경이다.

▲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개발 시대의 일그러진 관료,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할 만한 부동산 투자 이력을 지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와 신정환 가운데 누가 더 나쁜가?

한 쪽은 '재테크의 신'이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 140억을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는 재무부 관료였다. 직무상 개발에 대한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투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고아가 된 3남매가 비명횡사한 아버지로부터 유일하게 물려받은 유산을 '대리계약'을 통해 사들일 정도였다.

개발 시대의 일그러진 관료,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할 최중경 후보자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무감하다. 이명박 시대 3년이 남긴 가장 아픈 상처는 우리의 내면이 이처럼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대개 그러려니 하고 넘기도록 황폐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의 공기라고 할 언론은 '장악'의 굳은살이 자리잡은 지 오래고, '특혜'의 새살까지 돋고 있다. 방송은 최중경에 무감하고, 기사를 정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는 매체들은 간을 보고 있다. 몇몇 언론의 고군분투는 으레 그런다는 정파적 시선에 묶인다. 포털은 오늘도 신정환의 패션을 분석하고, 짤막한 심경을 어마어마하게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트위터에 "돈을 '번' 최중경보다 돈을 '잃은' 신정환에게 언론과 대중들의 비난의 화살이 더 작렬이 쏟아지는 괴이한 풍경. 부패한 관료는 당신의 삶을 부패시키지만, 부패한 딴따라는 그저 감옥에 갈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신정환을 기다리며, 공항에 '뻗치기'를 했던 그 많던 기자들의 오늘 행선지는 어딜까? 최중경 후보자가 '대리계약'으로 사들인 고아 3남매의 땅은 충북 청원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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