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잘만 활동하던 아이돌 그룹의 해체, 혹은 소속사와의 분쟁과 다툼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아이돌 천하라고 명명되며 가요계는 물론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까지 대한민국 연예계는 이들 재능 있는 청춘들에게 장악되어 있지만 정작 그 이면에는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짧은 찰나의 전성시대를 화려하게 불태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오랜 절제 생활과, 각종 무리한 강행군, 불합리한 계약 구조, 힘겨움이 숨어 있기 때문이죠. 조금만 틈이 생긴다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

기대 이상의 일본 진출 성공으로 인해 그녀들의 넉살좋은 말처럼 그야말로 기염을 통하고 있는, 한류스타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던 걸그룹 카라가 자신들의 소속사인 DSP에게 급작스러운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그것도 리더인 박규리를 제외한 한승연을 비롯한 다른 4명의 멤버들이 한꺼번에 해지를 발표하며 법적 공방에 들어간 것이죠. 연말까지만 해도 점핑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별다른 잡음이나 이상 징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런 소식은 자못 충격적입니다. 그녀들은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서로의 입장이 명확하게 밝혀지기 이전에 맞서고 있는 양자 사이에 시시비비를 확연하게 가리는 것은 무리한 억측이나 편들기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카라가 성장해오면서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가시밭길, 소속사의 도움이나 전략보다는 멤버 개개인의 고군분투로 가득했던 고생길이었거든요. 현재 활동하는 어떤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도 그녀들만큼 소속사의 무대책, 무계획의 전략 속에서 시행착오와 기다림, 방황을 거듭했던 그룹을 찾기 어려워요.(물론 사장님의 퍼즐 맞추기 속에 누더기가 되어버린 씨아보다야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말이죠.)

제2의 핑클이란 칭호를 달고 화려하게 아이돌 시대 2기의 문을 여는 한 축으로 출발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것이었습니다. 미미한 활약과 주목도로 언론과 방송의 관심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끝에 1집 활동 이후 그룹의 얼굴인 리드보컬의 탈퇴라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 이후의 고난스토리는 그래도 아이돌인 한승연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이라는 듣보잡이란 치욕스러운 별명을 붙여준 힘겨운 기다림의 시간이었죠. 아무런 보장도 미래도 없이 카라의 간판을 지켰던 이는 바로 한승연이었어요.

그렇게 오랜 공백 끝에 새로운 멤버 구하라와 강지영을 영입하고, 재정비 이후 차근차근 후속곡들을 발표하며 정상으로 걸어 올라왔지만 타이틀곡 선정이나 활동 방향, 언론의 노출도는 그녀들의 라이벌들에 비해선 늘 아쉽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의 투성이였습니다. 지금의 걸그룹 천하를 만들었던 2009년 여름의 걸그룹 전쟁에서 누구에게나 평이 좋았던 미스터보다 워나를 내세우는 어중간한 전략으로 파급효과를 스스로 감소시켜버렸고, 주목받아 마땅한 일본 진출의 성과도 별다른 부각 없이 멤버들이 방송에 나와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언론 노출이 저조했죠. 군소 기획사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분명 DSP의 전략과 지원은 아쉬움 투성이였어요.

게다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그녀들의 일정은 가혹하리만큼 괴로운 것들 투성이였고 그렇다고 해서 그 대우가 나아진 것도 없습니다. 굴욕의 상징이었던 초라한 숙소는 미스터의 대박 성공 이후에나 겨우 개선되었지만 그 역시도 비슷한 위상의 다른 걸그룹이나 아이돌들에 비해선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매번 방송에서 고백하는 것들은 가혹한 다이어트, 부족한 휴식,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죠. 다른 모든 정황은 모르지만 그녀들이 대리인을 통해 밝힌 힘겨운 일정과 빈약한 지원, 피곤한 일상에 대한 언급은 부인할 수 없을 거예요.

물론 상황을 지켜봐야하는 문제입니다. 리더인 박규리만이 제외된 이번 결정에 대해서 의아스러운 부분이 많고, 계약시기가 만료될 때마다 반복되는 소속사와의 갈등이기에 그 이면에 어떤 탐욕스러운 제3자들이 중간에 끼여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린 아이들의 꿈을 빌미로 엄청난 희생과 노력, 절제와 괴로움을 부가하는 삐뚤어진 아이돌 세상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갈등과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란 사실이죠.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언제나 긍정으로 가득했던 카라의 지금 모습은 어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모든 아이돌 그룹들도 언젠가는 맞이할 가까운 미래의 우울한 풍경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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