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넘게 많은 이들의 주말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시크릿 가든>이 마지막 회를 마쳤습니다. 모든 것들이 행복하게 끝났음에도 많은 이들은 마지막 회상 장면으로 인해 그들의 모든 것들을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치부하고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요?

완벽한 사랑은 그저 판타지 같은 것

<시크릿 가든>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영혼이 바뀐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던진 것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해줍니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원은 34년 동안의 인생을 정리하고 길라임과의 새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라임은 결혼식은 어머니를 모시고 하고 싶다는 주원의 바람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구청에서 혼인 신고를 하는 것으로 그들의 새로운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그쪽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쪽만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는 주원의 프러포즈는 가장 멋진 대사 중 하나였습니다. 단순한 사랑 정도가 아니라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에 함께 사는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다는 주원의 대사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가장 값진 밀어였을 듯합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매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모든 이들이 꿈꾸는 사랑이 그런 모습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이 시샘을 하고도 남을 만큼 풍성했습니다.

"인어공주는 인류 최초의 세컨드 동화.
백설공주는 사회 지도층 여자가 일곱 난쟁이에게 어장관리하다 사회 지도층의 키스 한 방에 난쟁이들 버리고 냅다 튄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사회 지도층의 여자가 잠만 자다가 사회적 이슈가 돼서 사회 지도층 만난 이야기"

주원이 라임에게 들려준 동화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주원답지요. 왕자와 공주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동화 파괴가 한창이던 시절 유사한 내용의 비틀기가 많았습니다. 미제국주의 의 시각으로 각색된 동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디즈니의 이야기와는 달리 잔혹 동화들의 원전들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5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그들이 얻은 것은 많았습니다. 주원과 라임은 세 명의 아이를 가진 다복한 가정을 꾸렸고, 라임은 액션 감독이 되어 과거 임감독이 보였던 카리스마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사람은 주원의 어머니입니다.

여전히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그녀는 손자들만은 따뜻하게 감싸는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주원의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지요. 철저한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녀와 함께 주원과 라임의 사랑 역시 뜨겁기만 합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했던 오스카와 슬은 결혼이라는 마지막 선물을 나누게 됩니다. 그 긴 시간 가졌던 사랑의 기억들을 하나의 뮤직 비디오로 담아낸 그들. 그들의 사랑 역시 환상의 연장과 비슷할 정도로 쉽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달 밝은 밤, 눈이 오기를 바라는 라임을 하늘에서 축복이라도 하듯 눈이 내립니다. 그런 풍경 속 라임의 대사에는 <시크릿 가든>의 주제가 모두 녹아 있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을지 모른다. 당신들의 정원에도 예쁜 꽃이 피길. 시원한 바람이 불길. 찬란한 햇빛이 비추길. 그리고 가끔은 마법과 같은 비가 내리길"

<시크릿 가든>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 가는 그들만의 소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비밀의 정원을 가꾸는 일은 각자의 몫임을 알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축복을 내리는 작가의 마지막 대사는 아름다운 동화 같았던 <시크릿 가든>의 덕담입니다.

마지막 장면 환자복을 입은 21살의 주원과 아버지를 보내고 서럽게 울고 있는 고등학생 라임의 모습은 많은 것들을 추측하게 합니다. 울다 지쳐 잠든 라임 곁에 누워, 잠든 라임을 바라보는 주원에겐 복잡한 심정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미안하다"를 수없이 되뇌다, 잠든 라임 곁에 누운 주원은 나쁜 꿈이라도 꾸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라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어줍니다. 그 행위를 통해 평온을 찾은 그들이 함께 잠든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시크릿 가든>을 두고 많은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꿈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꿈이라는 설정의 완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그들이 기억하지 못했던 첫 만남으로 마무리한 것은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연이라는 이토록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연들의 연속 혹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만남들로 인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시간이 흐르면 나쁜 기억도 행복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오스카의 대사처럼 그들의 아픈 기억이 시간이 흐르며 행복이 시작되는 단서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이 될 듯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죽어간 소방관과 남겨진 딸. 이후 기억이 사라진 상황에서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여인 길라임. 그렇게 그들은 우연 같은 필연 속에서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혼이 바뀌는 설정 역시 자웅동체 생물처럼 서로를 더욱 진솔하고 깊이 알 수 있게 만든 설정이었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에 궁금한 것은 당연하니 말이지요.

거의 실시간으로 이어진 촬영으로 인해 마지막 회에 말도 안 되는 방송 사고들이 있었지만 <시크릿 가든>은 오랜 시간 회자될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톡톡 튀는 대사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해석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는 시청자로서는 방송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못한 제작 환경은 여전히 커다란 문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배우들이 날을 세우며 촬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못한 처우를 받으며 수많은 스태프들이 '고난과 역경'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의 열악한 현실에서 방송을 제작한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달콤하게 전달되는 드라마를 위해 피땀 흘려 일하는 방송 제작자들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려면 좀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방송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나이키가 저소득 국가 어린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엄청난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착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은 최대한 빨리 개선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20번의 만남을 통해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주원과 라임이 떠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무언가에 자리를 양보하는 날이 오겠지만, 모두를 얼어붙게 한 차가운 겨울, 가장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준 <시크릿 가든>이 있어 올 겨울은 견딜 만합니다. 사랑, 그 환상 같은 일들이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시크릿 가든>의 바람처럼 2011년은 모두에게 사랑스러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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