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서 미디어계에도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광풍의 눈은 소위 ‘공영방송 구조개혁안’이다. 무슨 뜻인가? KBS2와 MBC를 민영화하고 EBS 등 공영방송과 KTV류의 국영방송을 새롭게 재편하는 것을 의미하는 모양인데, 이것에 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데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개혁인가? ‘공영방송 구조개혁안’의 핵심이 민영화인데, 민영화를 개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적이 있는가?

공영방송의 민영화 주장이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방송계는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동안 정의원을 중심으로 KBS 2와 MBC의 민영화는 계속해서 불거져 나왔고, 한나라당이 KBS와 MBC의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이 발생할 때마다 ‘위협성’ 민영화론을 종종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명박정부 집권 후 필연적으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는 영역임은 분명하다.

▲ KBS, MBC 사옥ⓒ미디어스
그런데 논의의 출발점이 너무나 엉뚱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민영화 논의가 왜 필요한가? 적어도 이 논의의 출발점은 현재 다공영 일민영체제에 대해서 국민들 시청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공영체제를 다민영체제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제1기준이 시청자의 편익인데, 현재 다공영체제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었는지를 평가해야 하고, 또 다민영체제로 재편했을 때 시청자들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제시할 때 비로소 민영화론이 개혁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최소한의 평가와 비전제시도 없이 정치권력의 일방적인 불편함 또는 피해의식에 대한 반발심리로 민영화론을 들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논의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외려 불편함이 가중되면서 개악의 개념에 가까운 논의수준이라는 판단이 절로 든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보복의 심리까지 묻어 있는 논의과정을 보면서 더 이상 현재의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가장 일차적인 원인은 정병국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일부에서 정치보복적 관점에서 민영화론을 제기해 왔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온 전경련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신문사가 배경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현재 한나라당 일부의원이 보이는 행태가 점령군의 위세라서 그 내용마저 폭력적이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고 했을 때 전경련의 주장은 그나마 감정 빼고 논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근거이며, 이를 여론화에 앞장서며 전경련의 주장이 상식 또는 합리인처럼 포장해 주는 나팔수로서 조중동의 의도를 살펴본다면 이 논의가 왜 왜곡되어 있는지를 살필 수 있다.

공영방송은 유흥가에서 작은 도서관같은 역할

먼저, 지속적으로 수 년 동안 전경련이 보고서를 내며 민영화 요구를 해 왔다. 전경련의 요구는 상당히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명박정부가 ‘친기업 친시장’이라는 시장만능주의 이념을 지금까지 보여 왔다는 점에서 민영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 진다. 하지만 전경련은 재벌기업의 선봉이다. 재벌기업들이 돈 벌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집단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방송 특히 공영방송을 공공재로 바라보며 문화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선만 드러나는 전경련의 주장이 타당한가는 점이다.

지상파방송 특히 공공재로서 공영방송은 유흥가에서 작은 도서관같은 역할을 한다. 온통 술집과 음식점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이 가득한 유흥가 같은 우리 사회에서 작은 도서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서점이라고 하지 않고 도서관이라고 명한 이유가 있다. 도서관이라고 할 때 무료이용의 성격이 강하다. 지상파의 경우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무료보편적 방송서비스이기 때문이며, 상품으로서 방송프로그램이 아니라 책처럼 지식과 정보 및 오락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경련은 탐욕스런운 눈길로 작은 도서관마저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이를 돈벌이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하는 것이다.

조중동이 종합미디어그룹으로서 사업체를 확장하려는 의도

둘째, 민영화론의 또 다른 축이 조중동이며 조중동의 선전이다. 실제로 조중동이 선거 때마다 특정 권력에 줄 서기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욕구의 분출이다. 하지만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며 여론을 주도하고 조작하는 재미가 있을지언정 그 속에서 녹아 있는 ‘돈벌이’관점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조중동의 실리적 측면에서 욕구는 바로 지상파 방송을 소유함으로써 종합미디어그룹으로서 그들의 사업체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신문시장은 ‘사양산업’이라는 선고를 받은 지 오래다.

그래서 현재 신문시장을 독과점하는 상황에서 특정정권을 창출하는 공신으로 역할을 한 후 방송법 신문법 등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규제를 풀어냄으로써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환경을 만들고 궁극에는 지상파 방송을 소유함으로써 신문의 영향력 또는 신문권력을 유지한 채 방송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언론권력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상업적 이윤창출마저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민영화론의 근거 중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민영화 논리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입장이다.

▲ 조선일보 1월23일자 A16면
한나라당과 조중동과 그 아류 신문들은 집요하게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를 요구해 왔다. 지난 해 전경련이 또 다시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경영합리화다는 등식을 들고 나왔다. ‘민영화=경영합리화’ 등식이 정당한가? 이 논의도 필요하겠고, 또 백번 양보해서 정당한 등식이라고할지라도 이것이 만병통치약인가? 하는 질문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민영화=경영합리화’의 등식이 존재하였지만, 이것이 21세기에 들어 상당히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하나의 미신일 뿐이라는 많은 증거가 도출된 상황이다.

수도, 전기 등 필수 공공재의 민영화가 영국이나 미국의 서민들에게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한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이와 더불어 남미의 좌파정권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현상은 이미 세계화 신자유주의 반공공주의가 더 이상 대안이 아님을 한국을 향해 웅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뭔가? 그것은 바로 ‘탈규제 사유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대표적인 자본의 논리다. 즉 공적 소유의 방송사를 사적 소유의 방송사로 전락시키겠다는 주장의 이론적 배경에는 바로 신자유주의 또는 반공공성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공영방송이 한국국민들에게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대8 사회'가 부익부빈익빈의 과정을 거쳐 '0.5대9.5 사회'로까지 양극화되고 고착화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뉴스 시사교양 드라마 오락 스포츠 영화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필수 공공재다. 양극화의 몇 없는 완충지대라는 의미다.

한데 지금 한국 사회의 0.5그룹을 편파적으로 옹호하는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그 아류들이 양극화의 한 축이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공영방송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그들 논리의 핵심에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가 있다.

KBS2 MBC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라는 미신

민영화와 경영합리화를 주문처럼 외쳐대는 보수세력과 그들 대변언론 조중동과 아류신문들이 날만 새면 강조 부각하는 '청년실업'의 사례로 반박해 보자. 그들이 말하는 선진국들은 민간영역이 부진하면 공공영역에서 산업 활성화를 끌어가며 국가경제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경제학적 상식이다. 즉 민간영역이 신입사원을 적게 뽑으면 공적영역인 정부나 공기업 등에서 신규인력을 흡수하여 균형점을 조정한다.

현재 한국의 민간기업들은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타고 오로지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빠져 엄청난 영업이익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신규채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때 공적 영역에서 신규인력을 대거 흡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작은 정부 운운하며 정부의 인력 증원을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하며 정부나 공공영역이 민간영역에서 해결하지 않는 청년실업에 개입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순간 이윤창출에 집착하게 되고 창출된 이윤의 일부만으로 사회적 책무를 담당하는 듯 흉내를 내지만, 공기업으로 존재할 경우 이윤창출을 포기하더라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무를 일차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가 IMF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절대선'인 양 포장되어 있지만, 이는 청년실업 등 양극화 고착화 과정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선전선동인지를 이제는 말해야 한다.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라는 미신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숨은 그림'을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즉 공기업을 민영화시켜 그 과실을 누가 가져가는가를 질문함으로써 숨은 그림의 정체를 벗겨야 한다. 대표적인 공기업인 KT를 민영화시켜 한국사회는 뭘 얻었는가? 전화요금 인상으로 인한 서민들의 부담증가와 더불어 보수세력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국익, 즉 KT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거의 50%를 외국에게 유출시키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KT가 사원을 6만 여명에서 3만 여명으로 축소하면서 무려 3만개의 일자리를 한국 사회는 상실했다. 그 3만 여명은 누구의 아버지며 누구의 어머니며 누구의 형이며 누구의 누이인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서도 매일 같이 언론이라는 미명 하에, 보수주의적 경제철학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을 선동하는 것이 조중동이요 한나라당이며, 그들은 아직도 '민영화! 경영합리화!'라는 돼먹지 못한 구호를 연호하고 있다.

사실상 청년실업의 상당한 책임은 정부보다 오히려 보수세력과 대변언론의 억지에 가까운 논리에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따져보자. 청년실업문제를 정쟁거리로 이용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달고 다니는 것이 민영화다. 하지만 청년실업과 민영화는 아주 다른 대척점에 서 있음을 이들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합리적인 논의만 성사되더라도, 이것이 제대로만 언론에 보도되더라도, 공적영역의 존재가 불황기 또는 반공공적 획일화 과정에서 얼마나 소중한 영역인지 국민들이 알 수 있을 터인데….

KBS2와 MBC를 민영화하면 누가 가져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가? 언론계에서 그 중 가장 근접해 있는 집단이 바로 '중앙일보와 삼성 컨소시움'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미디어그룹으로 확장하려는 조선일보와 재벌, 동아일보와 재벌 컨소시움을 상정할 수 있다. 여기에 각각 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과 손잡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KT처럼 외국의 거대 미디어자본에게 우리의 지상파를 내줌으로써 국내영상제작환경을 황폐화시키고 특히 미국의 영상물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구조를 고착화하여 우리의 문화를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더불어 지상파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그나마 번 돈이 외국으로 대거 빠져 나갈 것이다. 또한 나머지 떡고물은 국내 재벌의 손아귀로 전락할 것이고, 그들의 국내 사업을 영위해 가는 데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여론조작용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함을 넘어 아예 자사의 매체를 이용해서 일방적인 지지와 옹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신문의 한계를 벗어나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이용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보라! 중앙일보를. 삼성과 관련해서는 중앙일보의 기능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삼성에 불리한 기사는 보도하지 않는다. 둘째, 보도할 경우, 비판논리를 흠집 내며 삼성의 대변지로 기능한다. 사례로 변호사 김용철의 삼성비자금 폭로 이후 중앙일보는 철저히 침묵했으며, 더불어 태안반도의 기름유출사건에서도 삼성중공업의 책임론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KBS2와 MBC를 중앙일보로 만들고자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민영화를 통한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이요 미신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경영합리화가 필요하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장독이 있다. 장독 속에 구더기가 있다. 구더기 제거가 경영합리화라면 구더기를 잡아내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아니면 장독을 깨버리는 것이 올라븐 방법인지 판단해야 한다. 민영화는 장독을 깨버리는 것이다. 공기업의 비효율성이 과도하다면 내부개혁을 압박하는 것이 합당하다. 즉 구더기를 잡아내는 행위가 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 바로 다공영체제의 우월성에 관한 입장이다.

“외설화의 코드라는 ‘tvN의 스캔들’을 지상파에서 당신들의 아이들과 보려고 하는가?”

기억하시는지? KBS 드라마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 때리는 장면이 나왔다고, MBC 드라마의 목욕탕 앞 장면에서 뒤 쪽 남자배우의 체모가 흐릿하게 드러났다고 공영방송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것을. 이는 KBS와 MBC의 내부감시기능의 문제로 비난받은 사건으로 기록되었지만, 달리 보면, 시청자들은 이런 장면마저도 지상파에서 용인할 수 없다는 눈높이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

케이블TV PP가 최근 들어 프로그램수입브로커에서 벗어나 제작사로 탈바꿈하고자 나름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CJ미디어 tvN의 스캔들’이다. 유료방송도 본격으로 제작에 뛰어들었다는 좋은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옷 벗기기, 성희롱 성폭행 같은 상황 재현하기 등 ‘외설’코드로 5%전후의 시청률을 기록, 저질논쟁마저 시청률 제고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흐름은 아니다.

하지만 지상파는 시청률이 5%가 아니라 50%이상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프로그램은 만들 생각도 않는다. 지상파로서의 자부심이요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기 때문. 그런데 자부심과 예의가 위협당하고 있다. 한나라당 조중동같은 수구언론 전경련같은 이익단체들이 정파적 논리와 경제적 이득을 위해 KBS2와 MBC의 민영화론을 주장,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 tvn 스캔들ⓒCJ tvn

민영화란 뭔가?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 흐릿하게 체모가 노출된 장면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화두가 될 수 없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제작환경으로 내모는 것이다.

지상파는 80년 언론사 통폐합 이후 공영방송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90년 SBS 등장이후 다공영일민영체제를 유지해 왔다. SBS 초기, 도발적인 편성과 선정적인 제작은 지상파 편성·제작풍토를 교란시키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시청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는 한편 내부적으로 제작풍토쇄신을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이 더해짐으로써 우려를 해소, 시간이 지날수록 공영방송과 유사해진다. 이 과정을 SBS가 공영방송에 수렴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해도 되겠다.

출범 후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SBS는 공영방송의 경영행태, 제작행태, 보도행태를 닮아갔고, 공영방송노동조합의 단체협약마저 SBS노동조합의 모델로 작용해 왔다. 편성규약 등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의무사항도 공영방송과 별 다를 바 없다. 결국 한국의 지상파는 작은 경영방식과 서비스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특히 MBC와 SBS를 보면, ‘이것이 공영방송만이 가능한 서비스다, 이것이 민영방송만이 가능한 서비스다’고 지목하여 합의할 수 있는 차별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MBC는 그 자리를 지켰고, SBS는 MBC를 닮아 간 것이다. 혹자는 SBS와 유사한 MBC를 향해서 민영방송이랑 뭐가 다르냐며 MBC의 민영화 근거로 SBS와 유사성을 제기하지만 이는 역사와 현상을 거꾸로 보는 무식함의 자기표현이다. 민영방송이 다공영체제에 수렴되는 효과가 발생하고, 민영방송의 저질화가 저지되는 정기능이 발휘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다공영체제의 우월성이며,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방송구조의 큰 장점이다.

지상파에서 여성 옷 벗기기 등 심야프로그램의 선정성과 외설화가 일상화되어 있는 일본의 지상파를 보자.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더 이상 민영방송의 구심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NHK가 민영방송에 수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민영체제의 일본 지상파는 유료방송의 제작물과 경쟁함으로써 극단적인 외설화까지 치닫고 있다. 다민영체제가 일공영을 무력화시키거나 저질화시킨다. 다공영체제를 깨려는 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최소 외면 최대 무식’을 드러낸다.

더 큰 문제는, 일본에서 보듯이, 다민영체제가 지상파간의 경쟁에서 끝나지 않고 유료방송의 저질방송들과 경쟁상황까지 내몰려 저질화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이가 1이라면, 무료방송과 유료방송의 차이는 100이다. 그런데 다민영체제로 변하면 순식간에 무료방송과 유료방송의 차이는 좁혀질 것이다. 지금의 시청자 눈높이는 지상파간의 극단적인 경쟁에 의해서 강제로 낮아질 수밖에 없고, 또 낮아지는 만큼 유료방송시장의 제작물과도 경쟁하는 소용돌이에 휘감길 수밖에 없다.

다공영체제를 깨고 민영화를 말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외설화의 코드라는 ‘tvN의 스캔들’을 지상파에서 당신들의 아이들과 보려고 하는가?”

▲ 양문석
이상에서 민영화의 논의에 대한 문제점과 다공영체제의 우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공영방송의 구조개편 논의과정에서 소수의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과정을 밟고 민영화 논의를 제기한다면 이런 주장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자료와 논거를 통해서 민영화 논의가 진행되고, 시청자에게 좋은 현상이냐 아니냐가 핵심근거가 되는 논의과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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