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마지막 녹화 방송이며 2011년 첫 방송이었던 <1박2일 외국인 근로자 특집>은 방송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의 끝이었습니다. 설마 마지막에 이런 반전을 준비했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 못했는데 말도 안 되는 감동을 준 나영석 피디는 정말 나쁜 피디가 맞나 봅니다.

외국인 근로자에겐 우리의 모습이 숨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다섯 명과 함께 한 여행은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특집으로 방영되었습니다. 강호동과 동갑내기인 까르끼의 식사에 대한 집착, 영화에 출연했던 칸 등은 '1박2일'을 통해 존재감을 강하게 심어준 새로운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식 닭고기 커리를 만드는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카레 만들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큼지막하게 썰어낸 생닭과 감자를 처음이 아닌 마지막에 넣어 끓이는 과정에서 물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칸이 만든 '닭고기 커리'는 시청자들마저 감동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요리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승기로서는 이 모든 과정이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밖에는 없었지요. 우리의 상식을 완벽하게 뒤집은 칸의 저녁은 모든 이가 만족한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잠자리 복불복을 대신해 '크리스마스이브'를 위한 선물을 공개했습니다. 낯선 외국에 나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이 마냥 행복한 곳은 아니었을 겁니다.

낮은 임금에 장시간 노동, 처우 문제를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을 의지하는 고국의 가족들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일해야만 하는 수많은 외국 노동자를 대변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웃음 뒤에 감출 수 없는 어둠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제작진이 건넨 선물은 다름 아닌 출연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현지 집을 직접 방문한 영상들이었습니다. 네팔 까르끼의 집을 찾은 영상을 보며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는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1. 다섯 남자의 눈물

집 떠나온 지 7개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가족들을 조그마한 TV 화면에서 만나야 하는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에 눈물만을 흘릴 뿐입니다.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에 모든 이들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린 딸과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을 찾은 그의 모습에 진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흐느끼지도 못하고 화면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굵은 눈물만 흘리는 까르끼의 모습은 감동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았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 가난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독일로, 혹은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던 한국인 노동자들 역시 현재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와 다름없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지요. 그런 사랑의 힘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타국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얀마에서 온 예양의 화목한 가정과 판박이처럼 닮은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듯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칸의 집에는 노모의 안쓰러운 얼굴만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가보지 못한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완벽한 한국 사람이 되어 많은 웃음까지 주었던 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쏘완의 고향 캄보디아에는 낳은 지 두 달 만에 떨어져야 했던 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장아장 걸음마도 혼자 할 정도로 커버린 쏘완의 딸과 가족의 모습이 그에게는 함께 하지 못해 서러운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키스탄 아낄의 집에는 손에 잡힐 듯한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화면으로 처음 보는 여동생의 생후 20일 된 아이의 모습은 그들이 필연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지요. 2년 만에 보는 아버지는 더욱 늙어 보여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외국인 근로자에게 가족들이 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깜짝 선물을 한 그들은 나쁜 제작진들이 맞았습니다. 취침방으로 가던 그들을 반겨주는 가족의 모습은 감동 이상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2. 가늘게 흔들리는 가장의 어깨

강호동까지 한없이 눈물 흘리기 만들었던 42살 까르끼의 어깨가 들썩이는 흐느낌은 가장의 무겁고 아픈 뒷모습 같아 보는 이조차 힘겹습니다. 숨기고 싶어도 결코 숨길 수 없는 떨리는 어깨에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떨어질 줄 모르는 아내와 인형 같은 딸을 안으며 그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울고 있는 엄마를 달래는 어린 딸의 모습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아픔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잠든 두 살배기 딸을 발견하고는 다시 한 번 흔들리는 까르끼의 모습에서 잊고 살았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거동도 쉽지 않은 칸의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선 아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아가"라는 말만 되뇔 뿐이었습니다. 차마 말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마주해야 하는 칸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녹화 전날 1주기을 맞이해야 했던 칸에게 고국에서 온 어머니는 가장 행복하고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 나와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아들을 보며 한없는 눈물을 흘리는 아낄을 따뜻하게 감싸는 어머니의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은지원이 이야기하듯 못 알아들어도 어떤 말인지 다 알아 들을 것 같은 그들의 만남은 크리스마스가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아들을 타국에 일하러 보낸 미안함에 차마 아들의 눈도 마주하지 못하는 예양의 아버지는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음껏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아들의 체온만을 느끼는 상황마저도 그저 고마운 예양의 아버지는 만남보다 더욱 힘겨울 며칠 뒤의 이별이 더욱 아프게 다가올 따름입니다.

신혼 생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한국에 온 쏘완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제는 커버린 딸과 아직도 어색한 부인이 낯설기까지 합니다. 그런 낯설음은 그저 생각하지도 못하게 찾아온 선물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작진들이 마련한 3일 간의 여행을 뒤로 하고 고국으로 떠나는 가족을 배웅해야만 하는 그들의 눈에는 굵은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짧았던 3일은 그들에게 더욱 큰 그리움을 선물했습니다.

3. 나쁜 피디의 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

외국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선별적 그리움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가난한 외국인에 대한 편향된 시선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가난의 기억. 그 기억 저편에서 서럽게 울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 <1박2일>은 감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먼 타지에 나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만을 위해 고생을 감수하는 그들에게 가족과의 상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가족들을 수소문해 직접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방송이 해야 할 모든 일을 한 것입니다.

강호동을 시작으로 일박 멤버들이 줄줄이 무릎을 꿇은 이유는 제작진의 값진 선물이 감동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를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봐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까르끼의 어린 딸이 보여주는 귀여운 앵무새 같은 모습은 국적과 인종과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사람일 뿐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넓은 바다처럼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낯선 타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여행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선 감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행 버라이어티의 가치를 무한 확장한 이번 <1박2일 외국인 노동자 특집>은 우리가 숨기고 살아왔던 의식마저 깨어나게 만든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 캐멀의 '롱 굿바이'를 선택한 건 그들의 이별이 막연한 이별이 아닌, 조만간 다시 해후할 수 있는 행복한 이별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었을 겁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무리된 <1박2일 외국인 노동자 특집>은 방송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