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중앙일보가 바른미래당에 자유한국당과 합칠 것을 권유하고 나섰다. 최상연 논설위원은 "차라리 한국당과 합치는 '철수 정치'가 떳떳한 제 3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치인들의 의원직 유지 전략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발상에 불과하다.

26일자 중앙일보는 최상연 논설위원의 <바른미래 주적은 현 정권 아닌가> 칼럼을 게재했다. 최 논설위원은 "어쩌면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가 손잡고 새 호남당을 선 보일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며 "중요한 건 그게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히겠느냐의 문제"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26일자 중앙일보 칼럼.

최 논설위원은 "당연히 제 3의 길은 가시밭길"이라며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대개의 제 3당은 책임과 헌신, 희생으로 감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패배가 뻔해도 불가능한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그런 노력엔 많은 동정과 사랑, 박수가 쏟아졌다"고 썼다. 최 논설위원은 "'안철수 현상'은 그 중 하나"라며 "패권 세력의 오만과 독선에 중병을 앓는 한국 정치에 한 때는 만능 치료제로 통했다"고 회상했다.

최 논설위원은 "하지만 안철수당은 끝내 안철수 현상을 살려내지 못했다"며 "현재도 유권자 3분의 1이 무당파로 고정돼 머물지만 세력화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공적 헌신과 책임'이란 안철수 현상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최 논설위원은 "대표직과 당권은 두 번째"라며 "패권 청산을 목이 닳도록 외쳤으니 반패권에 힘을 보태는 게 우선"이라고 손학규 대표를 겨냥했다.

최 논설위원은 "바른미래당은 중도 보수를 내걸고 만들어졌다. 문재인 좌파 정권과 패권 세력을 견제하는 게 스스로 정한 나갈 방향"이라며 "그럼 문 정부가 주적이고 한국당은 경쟁자 관계"라고 주장했다. 최 논설위원은 "그런데도 주적에겐 2중대 역할을 자주 하면서 경쟁자완 주적처럼 싸웠다"며 "지금의 손 대표는 당 내 개혁 보수와 더 높은 담을 쌓고 있다. 그건 초심이 아니다. 거꾸로다"라고 말했다.

최 논설위원은 "아직은 만에 하나에 불과하지만, 새 지역당으로 포장을 바꾸려 한다면 그게 '침팬치 폴리틱스'다. 정치적 미아가 되는 지름길"이라며 "차라리 한국당과 합치는 '철수 정치'가 떳떳한 제 3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최 논설위원은 "누가 패권이고 왜 맞서야 하는지 전선이라도 분명해진다"고 덧붙였다. 최 논설위원은 "내세웠던 약속 기한은 추석이다. 따지고 보면 그 때까지 굳이 미룰 이유도 없다"며 "지금까지만으로도 이렇게 대놓고 콩가루였던 제 3의 길은 없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이러한 주장은 양당제 관성에 기반한 의원직 유지 논리에 불과하다.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분명한 책무다. 최 논설위원은 바른미래당이 선명하게 정부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로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이 정부를 견제하지 않았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바른미래당은 경제 분야에서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 지난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명되자 손학규 대표는 "재벌 때려잡겠다고 하는 사람이 정책실장이 됐는데 어떤 기업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경제 실패의 책임 인사라면 그에 맞게 경제 정책의 기조를 바꿀 인사가 들어서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결국 또 코드인사"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에서 손학규계와 바른정당계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시각과 선거제도 개혁 등의 의제 정도다. 오히려 바른미래당 내분에 불을 지핀 건 바른정당계다.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한국당 소속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최 논설위원은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를 거론하며 '새로운 호남당'을 얘기했지만, 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으로 향하고 싶어 한다는 후문 역시 만만치 않다.

최 논설위원은 바른미래당에게 차라리 한국당과 합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는 최 논설위원이 말한 "반패권에 힘을 보태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에 반하는 일이다. 여당 못지 않게 제1야당도 패권이다. 손학규 대표가 바른미래당 당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중점을 놓고 밀어붙인 사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우리가 대통령제, 양당제에서 얻은 게 뭐냐. 바로 여야 극한대결"이라며 "무조건 여당이 하는 건 뭐든 반대하고, 그러니 남북 평화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손학규 대표의 발언이 딱 들어맞다. 한국당은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고 이로 인해 국회는 걸핏하면 파행됐다.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은 90일이 넘도록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비판할 것은 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자는 자세가 비난받아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한 달만 버티면 정기국회이고, 예산 정국이 끝나면 곧바로 총선이 시작된다는 계산이 있다. 이미 총선국면이란 얘기다. 총선까지 물리적인 시간은 9개월 정도다. 최 논설위원이 바른미래당에게 한국당에 백기투항하라고 권유하는 이유도 총선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생환을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총선국면이 시작되고,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의원직 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소선거구제로 만들어진 극한의 양당제 때문이다. 제3당이 이렇게 '대놓고 콩가루'가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언론이라면 양당 재편을 권유하기 전에 근본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

한국당이 과연 건전한 보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도 고민해야 한다. 보수는 자유의 가치 속에서 확고한 원칙을 세울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사회 지도층의 의무를 다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게 보수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당은 박근혜 시절의 관성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내세운 슬로건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개혁 보수'였다. 한국당이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그릇이 되지 못하는 한 한국당으로 합치라는 최 논설위원의 권유는 정치공학적 발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