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드럭스>는 똘망똘망한 눈과 햄버거를 한입에 삼킬 것 같은 입을 가진, 앤 헤더웨이의 출연 외에는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미안하다, 제이크. 내가 남자배우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굉장히 드무니 이해해라) 흔하디 흔하고 진부할지도 모를 사랑이야기로 보일 만큼 색다른 요소가 없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타고난 바람둥이가 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실한 사랑을 만난다는 패턴도 충분히 익숙합니다.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려 비극의 생을 산다는 것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게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신파로 흘러갈까 봐 우려될 뿐이죠.
이러한 선입견을 <러브 앤 드럭스>는 보기 좋게 뒤엎습니다. 매기가 등장하기까지 예상 외로 오래 걸려 설마 했는데,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로맨스에 할애한 비중만큼이나 주변에도 눈길을 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제이미가 영업사원으로 들어간 '화이자(Pfizer)'와 연계하여 벌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는 극에 흥겨움을 한층 더해줍니다. 특히 항우울제인 화이저의 졸로프트 VS 일라이 릴리의 프로작이 벌이는 경쟁과 비아그라의 대성공 등은 <러브 앤 드럭스>에서 꽤 효과적인 장치로 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파로 흘러갈 법한 이야기에 제동을 걸어주는 역할입니다.
<러브 앤 드럭스>에는 그러한 애절하고 구슬픈 사랑 타령이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영화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솔직 담백합니다. 예를 들어 매기는 자신의 병 때문에 많은 남자로부터 상처를 받아 제이미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제이미는 매기에게 점점 더 빠져들면서 난생 처음 사랑고백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는 미래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고, 매기 또한 제이미가 그것을 감내할 수 없으리라 여겨 떠나보내려 합니다. 전형적인 멜로의 공식에 따르자면 으레 눈물, 콧물 다 흘리라고 강요할 법한 이 과정조차도 <러브 앤 드럭스>는 훌쩍 뛰어넘습니다.
전체적인 연출방향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이 대목은 꽤 현실적이라 가장 인상에 깊이 남습니다. 덕분에 아름답지만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화와도 같은 사랑이야기를 탈피하여 현실감을 가미하게 된 것이죠. 솔직히 고비다운 고비는커녕 그 고비로 인해 아름다운 사랑의 색채가 더 짙어지기만 하는 이야기는 재미없잖아요? 신파성이 넘치는 소재지만 유쾌함으로 상쇄시킨 것이나 최소한의 과정과 결과만 남겨둔 것은 분명 <러브 앤 드럭스>의 장점이자 미덕입니다. 막장 드라마가 그러하듯 뻔한 결과에 불필요한 이야기를 남발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 앤 드럭스>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하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후반부에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연출은 만족스럽고, 연출과 맞물려 극에 활기를 더해주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훌륭합니다. 마냥 범생이처럼 보이는 제이크 질렌할이 바람둥이 연기를 이만큼 잘 소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감정의 변화를 능수능란하게 보여주는 앤 헤더웨이의 연기력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앤 헤더웨이는 이 영화에서 누드도 불사(올레!!)합니다. 캐릭터를 보자면 노출연기가 필요불가결하니, 그녀의 결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러브 앤 드럭스>라는 제목은 단순히 사랑과 제약업계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사용된 것이 아니더군요. 졸로프트나 프로작 등의 항우울제와 비아그라 및 기타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해주는 약은 이른바 '해피 메이커(Happy Maker)'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나온다 한들 서로에게 필요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사랑보다 약효가 좋을까요? 혼자라면 영생을 살아간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교과서적인 설교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에 매기가 제이미에게 감격에 겨워 말하던 대사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난 늘 혼자였는데... 누군가 내 옆에 있어준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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