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이었지만 월드컵에 버금가는 클래스의 경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호주. 예상했던 대로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고, 사이좋게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경기는 재미있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4일 밤(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11 아시안컵 C조 조별 예선 2차전에서 구자철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후반 제디낙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1-1로 비겼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1승 1무를 거뒀지만 골득실에서 뒤져 조 2위로 예선 3차전 인도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8강에서 D조 1위로 예상되는 이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도전에서 4-5골 이상의 대량 득점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 축구대표팀 ⓒ 연합뉴스
조 1위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여야 했던 조광래호는 1차전 바레인전에서 퇴장당해 1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곽태휘 대신 황재원을 투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 없이 호주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바레인전에 이어 이번 호주전에서도 한국은 짧은 전진 패스를 활용한 역동적인 공격 축구로 상대의 무딘 수비를 뚫어내려 했고, 수차례 다양한 기회를 얻으며 우세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캡틴박' 박지성은 쉴 새 없이 공간이 보이는 곳마다 자리를 잡으면서 공격을 만들어나갔고, 새도 스트라이커와 최전방 공격수인 구자철과 지동원 역시 활발한 움직임과 뛰어난 기술을 앞세워 좋은 기회를 수차례 만들었습니다.

특히 지동원의 패스를 받아 구자철이 선제골을 넣는 장면은 딱 조광래 감독이 의도한 그림대로 나왔습니다. 지동원이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구자철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땅볼 패스로 내줬고, 이를 구자철이 한 번 트래핑 한 뒤에 지체 없이 슛으로 연결시키며 호주의 명골키퍼 마크 슈워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지동원의 센스와 구자철의 결정력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과 같은 골이었습니다.

오른쪽 풀백 차두리의 활약도 대단히 빛났습니다.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1차전에서 재미를 톡톡히 봤던 차두리는 2차전에서 수비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며 '공격만 잘 하는 선수'라는 오명을 완전하게 씻었습니다. 헤리 큐얼, 팀 케이힐이 볼을 잡을 때마다 차두리가 보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쉴 새 없이 뛰고 강력한 태클과 몸싸움으로 상대 공격을 저지하며 우세한 경기를 펼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조광래호의 경기력은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경기 자체를 굉장히 역동적으로 펼쳤고, 선수들이 조광래 감독의 '만화 축구'에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예전과 확 달라진 스타일로 경기를 주도해 나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빠르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원터치 패스플레이는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생각하는 축구에 눈이 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뒷심 부족을 드러낸 것은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골을 내주는 악순환이 또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광래호가 치른 A매치 5경기 가운데 3경기에서 골을 허용했는데요. 모두 후반에 내준 것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 이번 아시안컵 예선 2경기에서 모두 먼저 골을 넣고 상대에 추격을 허용하는 골을 내줬는데 8강, 4강, 결승 등 토너먼트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싸우고도 후반에 허무하게 내주는 약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약점이 드러난 것은 선수들이 쉴 새 없이 뛰다가 후반 막판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으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광래호는 예선 2경기 모두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 전반에 비해 무딘 공격력을 보여줬는데요. 이 틈을 타 상대가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내주고 결국 골까지 허용하는 문제점은 무실점 완승을 꿈꾸는 조광래호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우려됐습니다.

▲ 구자철과 교체해 들어가는 염기훈 ⓒ연합뉴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있는 3장의 교체 카드를 허무하게 날린 것도 아쉬웠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후반 중반 지동원과 구자철을 빼고 유병수와 염기훈을 넣으며 변화를 꾀하려 했는데요. 이들은 열심히 뛰기는 했지만 전반의 지동원-구자철 콤비가 보여줬던 유기적인 플레이와는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염기훈은 1-2차례 좋은 크로스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상대의 틈을 엿본 유병수도 공간 활용 면에서 약점을 드러내 이렇다 할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광래 감독은 후반 44분 교체해 넣었던 유병수를 또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하는 교체 카드를 썼습니다. 지금까지 조광래 감독은 5경기 가운데 3경기에서 교체한 선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불러들이는 카드를 활용해 왔는데요. 이는 썼던 카드를 다시 버리고, 새 카드로 바꾸는 것 자체가 허무하게 교체 카드 한 장을 날려버리는 꼴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뭔가 중요한 변화가 필요할 때 사용할 교체 카드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51년 만의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름대로 소득과 과제를 확인한 호주전의 조광래호였습니다. 인도전에서 크게 방심하지 않고 기세를 이어가 더 완벽한 모습을 갖춘 조광래호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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