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이 수영선수로서 잘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좋은 지도자를 만났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렸을 때 천식을 앓아 이를 고치기 위해 시작한 어린이의 재능을 보고 이 지도자가 과감하게 선수로 전환시켜 15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선수로 키운 것을 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어려움도 있고, 한 때는 헤어지기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훌륭하게 한 선수, 박태환을 조련한 이 지도자. 박태환이 한 번의 부진을 딛고 아시안게임에서 또 한번 좋은 성과를 내며 다시 세간의 화제를 받는 이 순간에 이 지도자는 명예롭게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며 15년간 키운 애제자와 '아름다운 헤어짐'을 선언했습니다. 비주류에서 오직 실력만으로 살아남아 국가대표 감독까지 역임한 이 훌륭한 지도자, 바로 노민상 수영대표팀 감독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노민상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노 감독은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태환이의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 세계선수권과 베이징올림픽 우승,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나 혼자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가 되어 이뤄낸 것들”이라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고 감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노 감독은 “태환이가 한국 수영의 기둥이지만 제2, 제3의 박태환을 발굴해내겠다는 꿈이 있다. 후배 지도자들이 많이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급하다고 본 것이 꿈나무들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프지만 후배들을 위해 이쯤에서 자리를 비워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박태환은 "너무 아쉽다"라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거라 생각하겠다. 어린 선수들을 길러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과 돌아오실 거라 믿는다"라며 스승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 박태환을 세계적 수영스타로 키운 노민상 경영대표팀 감독이 전격 사의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노민상 감독과 박태환, 스승과 제자는 박태환이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공식적으로 명예롭고 아름답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습니다. 지난 2007년 초, 박태환의 전담팀 문제와 내부 알력 다툼 때문에 1년 가까이 '안 좋게' 헤어졌던 때와 비교해보면 완전히 대조됩니다. 내부 사정이 어찌 됐든 스승이나 제자 모두 큰 문제없이 발전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웃으면서 마무리 짓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기립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을 어린 나이에 모두 석권한 뒤,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박태환이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실어준 노민상 감독의 공(功)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박태환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꼼꼼하게 체크하며 원하는 성과와 기록을 냈을 때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개성 넘치는 박태환이 마음을 다 잡고 훈련에 몰입하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데에는 노민상 감독의 역할이 컸습니다. TV 출연, 행사 등으로 정신력이 흐트러지면 '우려스럽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면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끔 하는 노 감독의 컨트롤 능력은 준비하는 대회의 성패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일이 노트에 정리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갖고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수행하게 하면서 성과를 낸 노 감독의 지도력은 수영계 내에서도 높이 평가받아 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박태환과 노민상 감독은 한국 수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제지간'이었습니다. 재능 있는 선수를 체계적으로 키워 15년간 함께 해 온 것 자체도 대단할 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기존의 틀을 뒤집은 '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고교 중퇴 출신이고 수영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수영에 푹 빠져 엄청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선수 관리, 육성 면에서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된 노민상 감독이나, 톡톡 튀고 개성 넘치는 신세대임에도 1년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한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박태환이나 모두 기존 상식의 틀을 깨고 한국 수영을 빛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들의 관계는 뭔가 특별한 것이 많았고, 좋은 성과를 낼 때마다 크게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15년 만에 박태환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 그리고 한국 수영의 새로운 출발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노민상 감독은 용퇴를 선언했고, 이 콤비가 만들어낼 또 하나의 성과를 다시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또 다른 희망을 낳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 마무리라는 점에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어떤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휴식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한국 수영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면서 멀리 내다보고 한국 수영의 발전에 힘을 보태려는 그 모습만으로도,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린 스승을 존중하겠다는 그 모습만으로도 참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무리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오랜 스승과 떨어져 이제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한 외국인 코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박태환.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보이면서 옛 스승의 결정이 더욱 빛나고 그를 더 흐뭇하게 하는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국 수영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기존 수영계의 낡은 틀을 벗는 데 큰 역할을 해낸 노민상 감독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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