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현역에서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양준혁이었습니다. 18년 간 프로에 몸담으며 거둔 통산 타율 0.316, 2318안타 351홈런의 대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양신’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양준혁은 전격 은퇴 선언과 그 배경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은퇴 후 트위터를 통한 소통과 야구 해설가로의 데뷔 확정 등 여전히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는 말처럼 양준혁은 삼성의 전설로 기억되겠지만, 한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쌍방울의 지명을 피해 상무 입대를 거쳐 1993년 삼성에 입단한 양준혁은 1999년 유망주 곽채진, 황두성과 함께 해태 임창용과 맞바꾸는 트레이드의 주인공이 됩니다.

삼성에 대한 진한 애착으로 트레이드에 강력 반발한 양준혁은 해태 김응룡 감독의 설득으로 트레이드를 수용합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트레이드의 희생양이 된 양준혁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하게 되고, 1시즌을 마친 뒤 LG로 다시 트레이드됩니다.

LG는 MBC 청룡 시절부터 변변한 4번 타자를 갖추지 못한 팀이었습니다. 원년 4할 타자 백인천을 제외하면 2000년대까지 이렇다 할 강력한 4번 타자를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현재까지 단 한 명의 홈런왕도 배출하지 못한 LG가 투수 손혁에 현금 5억 원을 얹어 해태로부터 양준혁을 영입한 것은 드넓은 잠실야구장에서 펑펑 홈런을 터뜨리는 오롯한 4번 타자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였습니다. 1993년 데뷔 이래 20홈런을 넘기지 못한 것이 1994년 단 한 번 밖에 없었던 양준혁의 당시 기록을 감안하면 LG의 과감한 트레이드는 적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양준혁은 LG 유니폼을 입은 이후 3할이 넘는 고타율을 유지했지만 2000년 15홈런, 2001년 14홈런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장타력을 드러냈습니다. 2001 시즌을 앞두고 LG는 FA 홍현우와 외국인 선수 로마이어를 영입해 양준혁과 함께 8개 구단 최강의 타선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양준혁은 2001 시즌 종료 후 0.355의 고타율을 앞세워 LG와 FA 협상에 임했지만 결렬되었고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김응룡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LG는 전력에서 열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6차전까지 끌고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만일 양준혁이 FA 계약에 성공해 삼성이 아닌 LG에 눌러앉았다면 한국시리즈의 향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 작년 9월 14일 잠실 한화전에서 2점 홈런을 터뜨리고 홈에 들어온 LG 이택근. 예비 FA 이택근이 올 시즌 종료 후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거액이 포함된 대형 트레이드와 2년간의 LG 시절, 그리고 FA로 LG를 떠난 양준혁의 모습은 그로부터 꼭 10년 뒤 이택근과 겹쳐집니다. 이택근은 현대 시절 두각을 나타내며 후신 히어로즈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지만 2009년 12월 LG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구단 운영비가 부족한 히어로즈가 현금 25억 원과 2군 선수 2명을 받고 이택근을 내준 것입니다. 여론의 비난에 시달렸지만 7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LG는 페타지니를 포기하며 좌타자 일색 해소 및 중심 타선 보강이라는 난제를 이택근 영입으로 해소하려 했습니다. 신임 박종훈 감독은 이택근 영입으로 두터워진 LG의 외야진을 ‘빅5’로 명명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9 시즌 종료 후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은 이택근은 LG 유니폼을 입은 뒤 2010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5월말 복귀했지만 1할 대 타율에 허덕였고, 타격감을 회복할 즈음에는 이미 LG의 4강행은 물 건너 간 뒤였습니다. 시즌을 마치며 0.303의 타율과 14홈런을 기록했지만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활약에 미치지 못한 이택근의 연봉은 2억 7천만 원으로 동결되었습니다.

절치부심으로 투수 및 포수만 참여한 LG의 사이판 전지훈련에 자진 참여한 이택근은 지난 11일 KBO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FA 연한이 1년 단축되며 2011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의 FA 취득 자격 요건 완화로 당장 수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택근 개인으로서는 낭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12 시즌 종료 후를 FA로 상정해 이택근의 2011 시즌 연봉을 동결시킨 LG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그 최고의 호타준족 우타자로 손꼽히는 이택근의 올 시즌 연봉이 낮아 보상 선수 혹은 보상금에 대한 부담이 적어 타 구단이 보다 쉽게 이택근을 영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론의 비난과 거액의 트레이드 머니라는 출혈을 감수하고 영입한 이택근을 LG가 고작 두 시즌만 활용하고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보는 입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두 시즌 중에서도 2010 시즌은 부상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으니 LG의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LG가 결코 자금력이 취약한 구단은 아니나 FA 영입 불가를 천명했던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삼성이 2011 시즌 종료 후 이택근을 영입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삼성이 머니 게임에 뛰어든다면 LG가 이택근을 눌러 앉힌다고 장담하기 어려워집니다. 삼성 외에 롯데나 기아같은 타 구단까지 영입 경쟁에 끼어든다면 이택근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를 것입니다.

만일 LG가 FA 시장에서 이택근을 놓치게 되면 10년 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FA로 2년 만에 떠난 양준혁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것입니다. 삼성 복귀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양준혁이 잠시 거쳐 간 LG 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드뭅니다. 이택근이 올 시즌 거둘 성적보다 내년 이맘 때 어떤 행보를 택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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