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디즈니가 독보적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에 디즈니로 대표되던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에 질색했습니다. "저게 뭐야? 만날 하는 얘기라곤 동화뿐이잖아. 너넨 고전문학 작가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발전 좀 해라!" 지금보다 훨씬 냉소적이고 까칠했던 때라 코웃음만 쳤었죠. 그랬던 제가 다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눈길을 주게 됐던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토이 스토리>를 세상에 내놓은 픽사의 등장이었습니다.

"오~ 이건 또 뭐지? 신선하다, 신선해!!!" 동화의 유지를 이어받아 초지일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열중하던 디즈니와 달리, 픽사는 보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픽사가 현실의 노골적인 반영을 추구했다거나 잔혹 동화를 들려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픽사나 디즈니 모두 세상을 미화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에게 주로 부여되는 역할이란 게 아이들이 동심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에 있는 이상에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픽사는 그것을 어떻게 들려 주느냐에서 디즈니와의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옛 현자들의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사실상 교훈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짙습니다. 이를테면 권선징악이죠. 그래서 아이들로 하여금 어릴 적부터 세상을 흑백논리로 바라보게 하고 양분화시키도록 하는 단순화에 몰두합니다. 뭐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위험하다고 보지도 않아요. 다들 그렇게 자라면서 세상의 혹독하고도 복잡미묘한 논리를 차차 깨우치기 마련이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너무 조숙한 아이는 달갑지 않거든요. 뭐니뭐니해도 아이는 아이다워야 합니다. 실수도 하고, 울기도 하고, 상처도 받고, 산타클로스와 이의 요정도 믿고, 아기는 엄마 배꼽에서 태어나는 걸로 알고 그래야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건 결국 천진난만한 아이들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빠르면 10대 이전부터 "산타클로스 따위는 세상에 없어"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아이라니... 그런 리얼리스트로만 가득한 무미건조한 세상에서 살고 싶으세요? 전 절대 아닙니다. 이성과 감성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짓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또한 냉철한 논리가 전부가 되선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갈수록 메마른 감성을 가지도록 강요하고 있는 건, 자신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여해 채우려는 일부 - 라고 하기엔 좀 많지만 - 몰지각한 부모들이에요. 아이들이 바라보는 '어른'이란 즉 사회이자 세상인데, 이게 참 모순투성입니다. 누군가는 열심히 공부해서 무조건 일류대학에 가고, 일류기업 혹은 더 나아가서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지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이 곧 사회와 세상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가치를 부여받는 길이라고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다 '루저'라고, 꿈 따위 이루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라고 일갈하는 것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른 부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행복의 척도는 자산의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명예와는 무관하다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첨언합니다. "Boys Be Ambitious, Carpe Diem" 꿈을 크게 가지고 기죽지 말고 앞으로 한발씩 천천히 내딛으며 삶을 즐겨보라고 권합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법, 그들과 함께 세상을 그리고 행복을 공유하는 법도 배우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섬이 아니듯 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설교합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혼돈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XX, 나보고 어쩌라고?"와 같은 욕설을 내뱉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는데, 그 거울이 두 갈래로 깨져 있으니 도대체 어떤 거울에 자신을 비춰 봐야할지 혼란스러울 따름입니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주로 부모와 학교, 친구, 기타 요건에 영향을 받아 각자만의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우리고, 우리가 그려놓은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과 악순환의 반복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언제 아마겟돈이 도래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까지 이런 과정과 결과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자, 앞서 제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상반되는 성질의 조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양쪽으로 끌어당기는 두 부류도 올바른 대비를 이루면서 화합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거기가 유토피아겠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괜히 유토피아의 어원이 아닙니다. 현실이 그러길 바라는 건 과분한 욕심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자의 사람들일수록 이성과는 거리가 멀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쪽으로만 이성이 필요한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소위 기득권층이라고 불리는 자들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이거든요. 기껏해야 가족, 친척 또는 알아서 설설 기며 갖다 바치는 지인들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디스토피아도 아닌 건 천만 다행입니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에요. 이 상태로 머무를 수 있을 정도로만 두 개체가 대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영영 이 이상으로 개선되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반론을 제기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것이 현실임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 이상주의에만 사로잡혀있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현상유지만 하자는 안이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신봉하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체 게바라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논하다가 말이 길어졌는데,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에 디즈니의 그것이 미약하게나마 양분이 되어준다고 믿습니다. 국경과 인종과 세대를 초월하여 동화가 필요한 것처럼, 이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순기능을 해주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이 좋아하고, 지금의 어른 중 상당수도 어릴 적엔 좋아했었죠. 그러나 어른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익히 보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음을 살아오면서 절절하게 체득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 취약점을 보완하고 수정한 이들이 픽사입니다. 요컨대 디즈니가 고전동화 버전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픽사는 현대동화 버전의 애니메이션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응당 동화가 주창해야 할 논지를 픽사는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하여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도 결국 동화지만,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동심을 간파하여 변태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픽사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일대 혁명에 가까웠죠.

제가 보는 픽사 애니메이션은 교훈을 주입하기보다는 폭넓은 공감대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어떤 정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본연의 순수성, 즉 동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지금의 픽사를 있게 한 일등공신인 <토이 스토리>입니다. 향수를 자극한다는 면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어쩌면 오히려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매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개봉하여 여전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 <토이 스토리 3>는 특히 그렇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저는 <토이 스토리 3>를 보면서 픽사 애니메이터들의 재능에 또 한번 탄복했습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할 줄도 알지만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하는지는 더 잘 알고 있더군요.

픽사가 성인을 위한 동화를 제작하며 디즈니로부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대표직을 이양받았을 때,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신성처럼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의 세 부문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던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첸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공동 설립한 드림웍스입니다. 이들이 2001년에 발표한 <슈렉>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두 번째 혁명이었습니다. 디즈니가 동화의 애니메이션화를 개척했다면, 픽사는 친(親)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고, 거기에 더해 후발주자인 드림웍스는 감히 반(反)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을 택하며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슈렉>은 이전까지 동화가 거들떠보지 않던 동화 밖의 세상을 관객에게 보여줬습니다. 일찍이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인식됐던 '오우거(Ogre)'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라니, 이부터가 파격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발칙한 애니메이션은 대부분이 동화의 전형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반항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슈렉>을 관람하던 저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한편으로 반색하게 만들었던 결말은 이루 말할 것도 없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의미가 상당히 광범위해서 조심스럽지만,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 반기를 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면에서 <슈렉>은 이 범주에 포함되는 대표작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만큼 놀라운 애니메이션이었죠.

각설하고, 이제 <메가마인드>로 들어가겠습니다. (웬 서론이 이렇게 기냐고 불평하시겠지만, 알고 보면 이 글의 본론은 <메가마인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드림웍스가 <드래곤 길들이기>로 호평을 받은 직후에 내놓은 이 애니메이션은 많은 부분에서 <슈렉>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참신함에서는 미치지 못하지만, <슈렉> 이후에 상대적으로 평이한 이야기를 고수하던 드림웍스가 모처럼 동화의 구조를 비틀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메가마인드>는 동화의 유전자를 충실히 이어받아 선악구도를 뚜렷이 해오던 '히어로 무비'를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었습니다.

주인공 메가마인드는 타 행성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에 의해 지구로 보내지게 됩니다. 동 시점에 또 다른 행성에서도 지구로 향하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교도소와 부잣집으로 떨어지면서부터 사뭇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태생부터 달라서 한 아기는 늠름한 체격에 슈퍼파워까지 갖춘 미남이지만, 다른 한 명은 누가 봐도 외계인의 행색을 하고 있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도 사랑받고자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외계인은 조금 다른 노선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영웅과 대적하는 지상 최고의 악당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슈렉>처럼 <메가마인드>는 히어로 무비에서 중심이 아니었던 인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지구를 구함으로 인해 추앙받는 영웅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에 그치던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도 날 때부터 악당은 아니었거늘 남들과 다른 외모로 핍박받던 환경이 악행을 일삼으라고 부추긴 셈입니다. 이러한 설정 역시 <슈렉>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동화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전환하여 재해석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가마인드>는 '선이 아니면 악'이 전부라는 단순한 논리가 지배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이것은 극의 후반부까지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이처럼 <메가마인드>는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룸과 동시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어 공분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에 족했던 악당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면 '막장 드라마'에서 즐겨 사용하는 수법과 흡사합니다. 막장 드라마는 항상 시청자의 분노를 사게 하는 캐릭터를 대두시켜 이른바 '욕하면서도 채널 점유하게 만들기' 신공을 펼칩니다. 아울러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그 캐릭터에게 동정의 시선을 부여하려고 합니다. 제가 막장 드라마를 경멸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청자를 감정의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열중할 때는 언제고, 설득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불쌍히 여기라고 하는 건지... 그건 그냥 사람들의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장난치는 수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메가마인드>도 그렇다는 얘긴 아닙니다. 방송횟수를 늘리고자 이리 꼬고 저리 꼬는 막장 드라마와 한정된 러닝타임을 가진 애니메이션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조금 확대해석한 것일 수도 있으나, <메가마인드>가 두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시선은 인종차별적인 그것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이 각각 자신의 선택과 별개로 교도소와 부잣집에 떨어진 것이나 외모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그리고 모두 외계인이지만 악당인 전자가 유색인종(?)으로, 영웅인 후자가 백인종(?)으로 설정된 것도 결코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애니메이션은 악당과 영웅을 존재론적인 시선에 입각하여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가마인드는 평생 메트로맨의 라이벌이기를 자처하며 그를 처단하고자 애썼습니다. 헌데 막상 오랜 숙원을 이루자 기쁘기는커녕 삶이 허탈해지고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설마 내가 성공할 줄은 몰랐다"라고 한탄하며 깨닫습니다. 영웅이 있기에 악당이 있고, 악당이 있기에 영웅이 있다는 사실을. 예상 외로 이처럼 대립하면서 존재의미가 부각되는 개념이 세상엔 꽤 많습니다. 행복과 불행, 미인과 추녀,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 아이와 어른 등등...

관객 각자에게 달렸지만 <메가마인드>는 한낱 애니메이션에 불과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모처럼 드림웍스가 많은 생각을 야기하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고 판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가마인드>는 전작 <드래곤 길들이기>보다 좀 더 심오한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진중하기보다는 다소 가볍게 다루려다 보니 상투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이 있게 한 발상은 참으로 기특합니다. 픽사도 그랬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라는 것을 재삼 실감했습니다. 테크놀로지는 그 속에 내포한 철학을 포장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메가마인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여러 인물과 작품, 이론에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시작하는 장면이나 전반적인 설정의 다수는 명백하게 <슈퍼맨>을 떠올리게 합니다. 메트로맨의 애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여자가 리포터인 것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한 영웅과 악당을 바라보는 존재론적인 시선은 <다크 나이트>에서 이미 차용한 바 있습니다. 조커가 배트맨에게 내뱉었던 그 유명한 대사를 기억하시죠? "You complete me" 그 밖에도 좀 더 파고들면 <메가마인드>의 근간에서 성선설과 성악설도 접할 수 있을 것이며, 메트로맨의 캐릭터는 <트레인스포팅>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요한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끝으로 1970~1980년대 팝, 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메가마인드>를 더욱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아... 랜디 로즈 ㅠ_ㅠ)', E.L.O.의 'Mr. Blue Sky', 건즈 앤 로지즈의 'Welcome to the Jungle', 마이클 잭슨의 'Bad', AC/DC의 'Back in Black'과 'Highway to Hell', 길버트 오 설리반의 'Alone Again', 엘비스 프레슬리의 'A Little Less Conversation'등이 기막히게 쓰여서 귀마저 즐겁게 합니다.

덧1 ) 톰 맥그래스 감독의 연출도 수준급니다. 특히 결말부에 펼쳐지는 공중전은 화려하고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합니다.

덧 2) 윌 패럴, 브래드 피트, 조나 힐 등이 들려주는 목소리 연기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좀 깨네요 ㅋㅋㅋ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