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새해벽두. 노동운동 판에서 20년 세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가 소주를 털어넣으며 지난 세월을 풀어놓았다. 굵직굵직한 싸움들, 패배의 기억들, 자본의 악랄함, 노동자들의 무너짐…. 어떤 것도 쉬운게 없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노동자들이 한 발 앞으로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 수도 없이 지켜봤다. 그이는 마지막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래도 살면서 언제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보겠나. 시키면 시키는대로 사는 삶, 언제 한번 바꿔 보겠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 금호고속 노동자들이 `장시간·저임금 노동착취 규탄’을 주장하며 지난해부터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광주드림
# 2011년 새해벽두. 20년 동안 고속버스 운전을 해온 그이는 처음으로 운전대를 놓고 머리띠를 둘렀다. 아무말 못하고 살았던 지난 20년, 울분만 가슴에 쌓였다. 지난 세월을 곰곰이 돌아보니 굴종의 세월이었다. 20년 동안 성실히 일했지만 남은 건 위장병과 척추통증과 나빠진 시력과 배신감이다. 20년 동안 회사는 그가 가졌던 노동력을 싼 값에 야금 야금 갉아먹었다. 내 집 한칸 마련하지 못했고, 병든 노모의 치료비는 어깨를 짓누른다. 그의 아내 역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서 월 70만원을 받고 일한다.

그이가 말했다.

“인간답게 살아보려구요. 불합리하잖아요. 바꿔볼려구요. 그래서 노조합니다.”

새해벽두에 만난 두사람. 20년의 세월은 미치지 못하지만, 기자생활 8년차 살면서 나도 많이 봤다.

“법적으로 책임없다” “노조 인정 못한다” “불법 파업이다” “요구가 터무니 없다”

온갖 수단으로 테이블을 걷어차는 자본을 봤다. 지금도 보고 있다.

새해벽두가 훈훈하지 않다. 서울에선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도 분투 중이다.

아름다운 기업 금호다. 대한통운, 금호타이어 집단해고 등에 이어 이번엔 금호고속이다.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금호고속 기사들이 64년만에 파업을 했다. “장시간·저임금의 노동착취 규탄!”을 외치며 민주노총 전국운수노조 버스본부 금호고속지회(이하 금호고속지회)는 지난달 18~20일 1차에 이어 12월30일~1월4일 2차 파업까지 해를 넘기며 사측과 싸움중이다.

무분규 64년의 기록(?)은 깨졌어야 하는 기록이다. 지금까지 금호고속 기사들이 당해온 수난을 생각하면 무분규 64년은 불평등의 64년이다.

하루 12~15시간 장시간 노동에 110~150만원 정도의 저임금, 배차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노동자 길들이기. 불합리한 것들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조합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측의 태도다. 그 동안 금호고속 노동자들은 소위 어용노조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이익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한국노총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회사 쪽에 6~7차례 단체 교섭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집단행동에 들어갔지만 회사측은 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한 채 교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광주지방법원 제10민사부(재판장 선재성)는 “일부 노조원들이 기업별 노조인 한국노총 산하 `금호고속 고속사업지부 광주분회’에서 탈퇴, 산업별 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운수노조 버스본부 금호고속지회’에 가입한 것은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 회사 쪽은 새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성실히 응해야 한다”는 2차례의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이번 노조 설립은 법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불법”이라며 “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항소할 예정이기 때문에 단체협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못 박고 있다.

대신 사측은 광주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벌어지는 집회를 막기 위한 방어집회 신고에 아르바이트까지 동원하는 등 사태해결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자본의 모습은 여전히 똑같다. 자본은 노동자들과 상생을 위해 테이블에 앉기보다 노동조합을 방해하고,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민사 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회유하는데 정열을 쏟는다. 대한통운 때도 그랬고 금호타이어 때도 그랬다.

노동운동에서 20년을 보낸 이도, 노동현장에서 파업 같은 것 꿈도 꾸지 않고 20년을 일했던 이도, 그리고 나도 다 보았다. 보고 있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도, 못 본척 외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언젠간 보일 것이라 믿는다.
다 안다. 상황은 어렵다. 그럼에도 말한다.

“살면서 우리가 우리 권리 위해 언제 싸워보겠나.”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