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공주 김태희의 온갖 푼수 유전자는 후천적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설을 데려다 키운 양모 임예진의 성격과 행동이 그대로 김태희에게 물려진 것이 분명했다. 방송 후 순식간에 1초 베드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해프닝도 사실은 임예진의 갑작스런 노매너 등장에 의한 오해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임예진의 짧고 굵은 감초 연기는 여성 조연들에게서 쉽게 붙여지지 않는 미친 존재감의 수식어를 붙여도 충분했다. 하이틴 스타에서 이제는 세바퀴에서 구박덩이 캐릭터로 변신한 임예진의 코믹연기가 감칠맛나고 고소했다.

정부와 대한그룹의 합작으로 추진되고 있는 황실재건에 대한 2탄으로 회장 이순재는 황실이 재건될 경우 대한그룹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기자회견을 단행한다. 손자 송승헌 입장에서는 이제 김태희가 공주가 되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은 상황이 됐다. 그런 속에서 송승헌 뒤를 밟은 기자들의 급습으로 인해 김태희를 곧이곧대로 밝힐 수 없어 자기 여자라고 둘러댄 것이 또한 일파만파 파급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송승헌의 임기응변이지만 아주 노골적인 복선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절한 작가께서는 이 두 사람의 로맨스를 대놓고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황실재건도 이루면서 송승헌의 재산도 지킬 수 있는 윈윈전략이 될 수도 있으니 해피엔딩을 위한 최적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 마이 프린세스의 두 주인공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정을 쌓아 가느냐가 이 드라마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여전히 엽기공주 김태희의 푼수 연기는 물이 올라 대사와 장면에 코믹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 김태희를 만든 장본인이 마침내 등장했다. 집까지 찾아온 기자들 때문에 송승헌과 김태희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운영하는 펜션으로 피신했다. 처음에는 그저 데려다주려던 송승헌은 갑자기 등장한 그것도 다분히 만화적으로 깜놀하게 등장한 임예진 덕분에 억지춘향격 사윗감으로 몰리게 된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임예진의 등장부터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하겠지만 이미 김태희가 닦아놓은 분위기로 인해 소위 리얼리티 여부는 전혀 논의될 필요가 없게 됐다. 헌데, 고급차를 타고 온 송승헌과 김태희의 관계를 무조건 연인관계로 단정짓는 것하며 송승헌이 돈 좀 있는 사람으로 판단되자 무조건 사윗감으로 몰아가는 모양이 꼭 춘향의 어미 월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춘향이 이몽룡과 첫날밤을 보낸 것이 모두가 월매의 현실적인 욕망에 의해 가능했던 것처럼 임예진도 좁은 김태희의 방에 두 사람을 몰아넣는다. 물론 두 사람이 느닷없는 러브신을 벌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앨범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침대로 쓰러지고 그때 마침 문을 발칵 열고 임예진이 등장하자 당연히 두 사람은 놀라 허둥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 임예진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 장면은 딱히 웃긴 장면이 아닐 수도 있다. 코미디라는 것은 직접 대사와 슬랩스틱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처럼 극중에 목격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성립하는 고단수의 코미디도 존재한다. 좀 고급스러운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예진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오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니 점입가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임예진의 오해가 예고를 통해 더욱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 곤란함이 결국 기정사실이 되겠지만. 아무튼 춘향전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월매에 대해서 완벽하게 해석한 임예진의 연기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마이 프린세스가 김태희의 망가짐으로 화제가 됐지만 사실은 김태희가 작가와 연출에게 매일 큰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아마도 분명히 김태희 어록이 모아질 것이다. 김태희 입에서 나오는 엉뚱하고 푼수기 다분한 대사들이 배꼽을 잡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는 학교에서 기자들을 피해 대한그룹 소유 호텔로 몸을 피했는데, 그 앞에서 김태희는 머뭇거리면서 “우리집 가훈이 경쟁업소 출입금지거든요”한다.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런 엉뚱한 말이 김태희의 점덤 더 프리티 우먼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아무래도 마이 프린세스는 단지 MBC 수목극 저주를 푸는 것만이 아니라 내친 김에 정상까지도 넘보는 것 아닐까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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