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버스를 대절해 KBS를 찾아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는 “양승동 KBS 사장은 퇴진하라” “노골적인 선거개입 KBS 즉각 해체하라”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이 이처럼 분개하게 된 이유는 18일 KBS 9시 뉴스 때문이다. KBS 9시 뉴스는 “일 제품목록 공유...대체품 정보 제공까지”라는 리포트를 했다.

이 리포트에서 누리꾼이 만들어 큰 호응을 얻은 영상을 소개했는데, 거기에는 일장기에 자유한국당의 로고를 결합하고는 “안 뽑아요”라는 글귀가 적힌 장면도 있었다. 이를 본 자유한국당이 발끈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에 대해서 일본 편을 든다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KBS가 매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KBS '뉴스9' 18일 보도화면 갈무리

그러나 KBS가 의도를 갖고 해당 영상을 소개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자유한국당의 주장대로 총선개입은 더 믿기 힘들다.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KBS 뉴스가 나름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지만큼 변화가 크지는 않았다. 여전히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거나, 때로는 그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잘못이기는 하지만 의도가 아닌 실수로 봐야 한다.

자사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지적하고, 비판을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발 무겁고 소심한 KBS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총선개입이라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못 본 척 할 수도 없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항의를 할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유한국당의 항의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도 있다. 얼마 전 세월호 발언 논란 때의 대처다.

자유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한척으로 선거를 이겼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만 이 내용이 댓글을 읽은 것이라서 막말도 아니고,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이번 문제가 된 KBS의 보도 역시 누리꾼이 만든 영상을 소개한 것이므로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이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KBS 로고 사용을 다룬 한 기사에서 2만 5천개가 넘는 추천을 받은 댓글을 보자. “얼마 전에 니네당에서 세월호 조롱하는 의미가 담긴 댓글 읽어놓고는 "댓글을 읽은 것일 뿐"이라며? KBS는 그저 네티즌이 한 거 그대로 올린 것밖에 없잖아. 내로남불 쩌네 ㅋㅋ”라는 내용이다. 자유한국당이 이 댓글에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미경 "'세월호 한 척' 갖고 이긴 문 대통령, 이순신보다 낫다" (연합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호응을 얻은 영상이라 할지라도, 이를 뉴스에 인용할 때에는 더 신중했어야 했고 엄격하게 검증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KBS의 잘못은 분명하고,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다. 방송사들의 그래픽 실수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보통은 시청자 혹은 누리꾼이 먼저 발견하고 항의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반응이다. 그 차이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민심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은 국회 발언 중에 “우리 일본 정부” “일한관계”라는 표현을 썻다??논란이 제기됐다. 윤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질책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논란 이후 윤 의원은 자신의 메모까지 공개하면서 단순한 실수였음을 강변했다. 물론 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이 은연중에 사용됐음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누리꾼들이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지 않게 되는 이유를 자유한국당이 고민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일본과의 갈등에서 자유한국당이 취한 모든 언행에서 국익이 당리당략을 앞선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권을 비판하고, 공격해야 하는 것은 야당의 본능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적어도 일본의 공격에 곤란을 겪고, 대다수의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이라면 야당 이전에 국민의 일원이어야 한다. 일본 불매운동이 점차 국민적 호응을 넓혀가고 있다. 노노재팬 사이트에 몰리는 민심을 읽을 것이냐 외면할 것이냐는 자유한국당의 선택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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