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스포츠는 다양한 성과를 내면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역대 원정 대회 최고 성적을 거뒀을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종목에서 많은 메달이 쏟아져 주목받았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2년 여 남짓 앞둔 시점에서 한국 스포츠는 다양하면서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내면서 새로운 희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쾌거 속에서 웃지 못했던 종목들도 몇 개 있었습니다. 금메달을 4개 따내기는 했지만 이전 대회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냈던 태권도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효자종목이라 불렸던 두 종목, 복싱과 레슬링은 '노골드'의 수모를 겪으며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내고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바뀐 룰과 스타일, 세대교체가 아직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다보니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단 한 명도 정상 자리를 밟지 못하며 아쉽게 대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광저우 참사'라는 말까지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복싱과 레슬링이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2011년 새해 벽두부터 힘차게 일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두 종목 모두 개방형 공모제를 통해 감독을 새롭게 선임하는가 하면 경쟁력 있는 신예들을 집중 지원하거나 체계적인 훈련으로 경쟁력을 키우며 재기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 2010-2011 월드시리즈복싱(WSB) 인천 레드윙스와 중국 베이징 드래곤스와의 아시아리그 5차전 겸 홈 개막전에서 -54kg급 경기에 출전한 인천 레드윙스 김주성(왼쪽)이 베이징 드래곤스 류 샤오팡의 안면에 왼손 훅을 적중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복싱은 1990년대부터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 나서 정상급 성적을 낼만한 선수를 키우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난해에는 세계연맹과의 갈등으로 퇴출되는 아픔까지 겪으며 최악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옅은 가운데서 세계대회조차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력은 최악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동메달 두개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아시안게임을 마쳐야 했습니다.

레슬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트제로 룰이 바뀌고, 체력이 보다 강조되면서 변화된 틀에 선수들이 빠르게 적응해야 했지만 한계가 따랐습니다.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노골드의 수모를 당하며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양궁, 유도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효자종목 가운데 하나였던 레슬링의 몰락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종목 모두 세대교체 실패, 안일한 팀 관리, 경쟁력 약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그랬던 두 종목이 연초부터 타 아마추어 스포츠 종목과 다르게 '부활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먼저 안상수 회장이 새롭게 취임한 복싱은 중장기적인 발전책을 내놓아 재기를 모색했습니다. 한국 복싱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를 공개 채용해 능력 있는 인물을 지도자로 내세우기로 하는가 하면 세계 정상급 선수에 견줄 만 한 선수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기로 해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복싱 강국 팀을 초청시켜 경기를 갖고, 국제 대회 출전도 더욱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또 중장기적으로 2014년과 2016년에 있을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대비해 차기 국가대표 꿈나무를 육성하는 데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복싱 강국인 카자흐스탄 등지에 보내 합동 훈련을 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렀던 한국 복싱이 바깥으로 나와 경쟁력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입니다.

▲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레슬링은 방대두 그레코로만형 감독이 2008년 이후 3년째 재선임됐지만 이전과 다르게 공모제를 통해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선발해 파벌보다는 능력 위주의 지도자 선발에 역시 중점을 뒀습니다. 방 감독이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재선임됐지만 자유형 감독으로는 유종현 감독이 새롭게 선임됐고, 코치 역시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경험이 풍부한 손상필, 문의제가 발탁돼 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재기를 노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해도 신예 선수들이 소중한 경험을 쌓으면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확인한 것도 레슬링의 부활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최규진, 김현우, 이세열, 박진성 등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조금만 더 다듬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자원들이 풍부하게 있는 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입니다. 베이징올림픽 실패 이후 점진적으로 팀 운영 방식이 바뀌어 나가고 있고, 일선 지도자나 선수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예전보다 더 구슬땀을 흘리면서 부활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많은 희망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레슬링과 복싱은 올해를 여러 가지로 반전의 계기로 삼으면서 재기를 다지려 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점진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옛 효자 종목'들의 뿌리를 다시 한 번 튼튼하게 다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마추어 스포츠들의 훌륭한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틀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려 하는 옛 효자종목, 레슬링과 복싱.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하고 체계적으로 잡혀있지 않은 가운데서 기초부터 튼튼하게 쌓아올린다는 자세로 단단하게 무장하는 레슬링, 복싱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렇게 계획대로 잘 만들어 나간다면 내년 8월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에서는 두 종목 모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며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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