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평가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51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2011 아시안컵에서 산뜻하게 출발했습니다. 대표팀은 11일 새벽(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바레인과의 C조 조별 예선 1차전에서 구자철(제주)의 2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첫 단추를 잘 꿰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근 네 대회 연속 첫 경기 무승 징크스를 깼을 뿐 아니라 중동 땅에서 중동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 그리고 4년 전 대회에서 바레인에 졌던 한을 모두 풀어낸 승리여서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이긴 것 자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조광래호가 좋은 내용을 선보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빠르고 세밀한 패싱플레이, 공격 축구가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면서 단단한 밀집 수비, 끈끈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바레인을 뚫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젊은 피' 구자철과 지동원 등이 폭넓고 활발한 움직임, 그리고 빼어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해내며 조광래호가 신바람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후반 막판에 곽태휘의 퇴장이 아쉬웠지만 선수들 개인적인 플레이나 전술적인 움직임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경기였습니다.

▲ 아시안컵 C조 한국 대 바레인 경기에서 박지성 등 선수들이 2대1로 승리를 거둔 후 바레인 선수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지난해 9, 10월에 치른 이란,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나타났던 답답한 경기력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수나 감독 모두 원했던 경기를 제대로 선보였습니다. 이미 익숙한 포백을 바탕으로 안정된 수비 전술을 추구하면서 공격 성향의 선수를 중원부터 최전방까지 대거 포진시켜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선보이려 했는데요. 특히 한 포지션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로 자주 위치를 바꿔 가면서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어내려 애썼고,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이어지는 원터치 전진 패스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전략이 어느 정도 재미를 봤고, 적재적소에 골이 잇달아 터져주면서 의미 있는 1승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발휘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수들의 볼 키핑, 그리고 전개하는 속도나 방향은 거의 불안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고 측면과 전방의 공격수들은 과감한 돌파와 날카로운 슈팅으로 상대 문전을 잇달아 위협하며 좋은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의미 없는 패스, 공격 전개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기회를 살리고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 나갔는데요. 사실 이는 이전 대표팀 경기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는 확실히 시원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중앙에서 템포를 조절하는 선수들이 제 몫을 다 한 것도 원활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날카로운 침투 패스, 그리고 과감한 슈팅까지 '처진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보여준 구자철은 그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였습니다. 중심 역할을 하는 선수가 경기를 잘 풀어나가다보니 좌우 측면, 그리고 전방의 선수들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엿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7-3 수준의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과거 중동 복병을 만나면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이유가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하는 선수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적어도 바레인전에서 보여준 중원, 공격수의 활약상은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구자철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연합뉴스
마지막까지 조광래 감독이 고민한 포지션이었다는 우측 풀백에 차두리를 기용한 것도 완전하게 적중했습니다. 차두리는 활발한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수비를 제대로 혼쭐냈습니다. 빠르고 저돌적인 공격 성향의 차두리가 후방에서 전방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다보니 다양한 공격 패턴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고 조 감독이 원하는 공격 축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데 '숨은 원동력'이 됐습니다. 앞으로 조별 예선 호주전, 토너먼트 등에서도 똑같이 공격 축구 스타일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공격 성향이 강한 차두리의 바레인전 활약은 대단히 돋보였습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막판에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이 과정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곽태휘가 불운하게 퇴장 당한 것은 '옥의 티'였습니다. 또 2-3골 정도는 더 넣을 수 있었음에도 골결정력 면에서 아쉬운 장면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확실히 아시아의 클래스를 넘어선 축구를 구사하면서 상대를 압도하고 승리를 챙겼다는 점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코드명 '왕의 귀환' 1차 관문을 가뿐하게 넘어선 조광래호가 원하는 성적 뿐 아니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선진형 축구를 보여주면서 세련된 팀으로서의 가능성을 앞으로도 계속 살려나갈지 흥미롭게 지켜봐야겠습니다. 분명히 바레인전에서는 많은 가능성과 기대감을 갖게 한 조광래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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