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은 한국 축구의 핫키워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비록 상반기에는 월드컵 대표팀 발탁 좌절이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를 딛고 소속팀의 준우승을 이끌고 아시안게임 대표 주장으로도 맹활약하는 등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랬던 구자철이 2011년 시작을 알리는 첫 국제 대회, 그리고 첫 A매치에서 또 한번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구자철은 11일 새벽(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1 아시안컵 C조 조별 예선 1차전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전반 39분에 선제골을 쏘아올린 뒤 후반 6분에 추가골까지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2골을 뽑아 넣은 것도 대단했지만 자신이 해내야 하는 역할을 100% 이상 수행해내면서 '진화형 선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당장 유럽 빅리그 스카우터들이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구자철의 활약상은 크게 돋보이고도 남았습니다.

▲ 구자철이 11일 오전(한국시간) 아시안컵 C조 한국 대 바레인 경기에서 첫 골을 성공시킨 후 이청용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박주영이 들어갈 자리였던 처진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장한 구자철은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의 생각과 일치하는 플레이를 펼치며 한국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초반에는 템포 조절과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데 중점을 뒀지만 서서히 강도를 높여 다양하고 창의적이면서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맹활약했습니다. 활발한 움직임과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공격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틈만 생기면 과감하고 자신 있게 슈팅을 날리며 바레인 골문을 정조준했습니다. 그리고 킬러 본능을 숨기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잇달아 득점포를 가동,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첫 경기 징크스를 깨는 데 일등 공신이 됐습니다.

사실 두 골 모두 약간의 운이 따르기는 했습니다. 첫 골은 상대 수비수 맞고 들어갔으며, 두 번째 골은 이전에 터진 차두리의 위협적인 슈팅이 어느 정도 기여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골 모두 자세히 상황을 보면 구자철의 움직임, 그리고 자신 있는 플레이가 없었다면 골로 연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고 지체 없이 날린 슈팅 타이밍도 좋았으며, 이러한 결정을 하기까지 순간적으로 자신이 해결을 해야 한다는 순발력도 돋보이는 골들이었습니다. 약간이라도 지체했다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구자철은 해결 능력을 보여줬고, 이 골들 덕분에 한국은 기분 좋은 승리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또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등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의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보였던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자철이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니 좌-우 측면의 박지성과 이청용, 그리고 구자철의 중원 파트너인 기성용과 최전방 지동원까지 빠르고 원활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전진패스와 어느 곳을 가리지 않는 활발한 몸놀림은 기술 좋고 감각이 빼어난 해외파들의 장기를 유감없이 드러내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친 구자철이었고, 조광래 감독의 '구자철 시프트' 카드는 대성공을 거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아시안컵 우승을 위한 핵심 카드가 첫 경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남은 경기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성과라면 큰 성과일 것입니다. 이미 구자철은 U-20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젊은 나이에 다양한 경험, 그리고 많은 성과를 낸 신예로 잘 알려져 있는 선수인데요. 아직 덜 여문 자원이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선수라 해도 아시안컵 첫 경기를 치르면서 얻은 자신감은 다시 한번 그의 잠재력과 장기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전에서 만날 강호 호주를 비롯해 토너먼트 등 중요한 경기마다 구자철의 역할, 그리고 활약상은 더욱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바레인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향후 조광래호의 진정한 황태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덩달아 아시안컵 이후 본격적으로 떠오를 '포스트 박지성' 그리고 세대교체 과정에서도 선봉장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능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줄 알아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에 거의 들어맞는 재능을 갖고 있는 구자철은 충분히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 경기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해도 어쨌든 바레인전에서 뭔가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 것만은 분명했던 구자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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