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은 이렇게 시작됐다.

“야! 신문기자 너희들도 좀 따라와. 해남신문 기자들도.”

이 말만 들으면 신문기자들은 자신의 말 한 마디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부하가 되어 있다. 해남신문 기자들도 그 부하 중의 하나다.

MBC가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 시간 빨리 뉴스를 전한다며 선보인 8시 <뉴스데스크>. 주중에는 술이다, 약속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온가족이 모여 함께 밥 먹는 날이 드문 나로서는 주말에라도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11월14일 저녁밥을 먹은 후 MBC 뉴스를 보다 보니 많이 들어본 지명이 귀에 들어왔다.

자치단체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인데, 전국 자치단체장의 절반이 각종 비리 등으로 인해 법정에 서 있다는 보도였다. 그 사례로 전라남도 해남군 사례가 보도됐다. 금품살포 개입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거기에 호화관사 구입 논란까지 빚고 있는 해남군수에 대한 고발이 주요 내용이었다.

▲ 지난해 11월14일 주말 <뉴스데스크> “자치단체장 호화관사는 기본, 기자는 부하직원?”화면 캡처
<절반이 법정에>라는 제목의 기사는 ‘자치단체장 호화관사는 기본, 기자는 부하직원?’ 아니냐며 지방자치단체장과 언론과의 유착 관계를 고발한다. 특히 해남군수 의혹을 보도하면서 군수가 지역 경찰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는 내용, 신문기자들에게 마치 부하에게 지시하듯이 막말하는 장면을 내보내며, 지역에서 감시,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이 권언유착 행태를 보이고 있는 장면을 부각시켰다.

첫 번째 장면.

MBC 취재 과정에서 해남군수가 신문기자들에게 행한 태도다.

해남군수는 호화관사 구입 논란에 대한 취재가 나오자 자신이 청렴하다며 취임하기 전까지 살았다는 일반 허름한 주택으로 취재진을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이 과정에서 신문기자들에게 따라오라며 막말을 한 것이었다. 군수가 막말을 하자 방송에서는 자막으로 그 장면을 내보냈고 해남신문의 경우 신문사 이름까지도 그대로 당일 전국 MBC 뉴스데스크 시청자들에게 여과없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해남신문의 명예는 당연히 실추되고 말았다.

두 번째 장면.

이어진 장면에서 한 전남 지역 신문기자가 MBC 기자에게 회유하는 전화를 한다. 이 전화는 당연히 녹음이 돼서 자막으로 보도됐다. 해남군수를 옹호하는 전화였다. 별 것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자막에서는 이 전화를 해온 기자의 신문사 제호는 OO신문으로 익명 처리됐다.

여기서 남는 의문은 당시 해남군수를 옹호하며 MBC 취재진을 회유하는 전화를 했던 신문사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해 보호하면서, 아무런 관련도 없던 해남신문 제호는 그대로 방영해 언론 구실도 못하는 신문으로 전국 시청자들에게 낙인찍히게 했느냐는 것이다.

▲ ⓒ해남신문 화면 캡처
MBC <뉴스데스크>가 방송된 후 해남신문에서는 막말을 한 해남군수와 MBC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건강한 지역언론의 길을 걸으려고 노력하는 지역신문들이 모여 연대를 맺고 있는 (사)바른지역언론연대(회장 오원집) 회원사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기로 하는 등 대응에 들어갔다. 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도 이번 보도로 인해 마치 전국 주간 지역신문들이 언론으로서의 제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싸잡아 보도한 것은 지역신문을 폄훼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며 역시 사과 요구를 했다.

막말을 해 이번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해남군수는 바로 사과의 뜻을 밝혀왔고, 문제는 MBC였다. 해남신문에서는 공식 사과가 없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MBC 측으로부터 바른지역언론연대에 지난해 12월1일 이건 뭐 사과문도 아니고, MBC 입장 발표문이 왔다.

그 내용 중 일부다.

『11월14일 뉴스데스크에 방송된 <절반이 법정에>라는 제하의 기사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지역 언론을 폄훼하려는 뜻은 결코 없었으며 저희는 귀 회원사와 같은 건강한 지역 언론에 대해 어떠한 편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보도 이후 올바른 지역 언론들마저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해당 기사를 총괄 지휘했던 책임자로서 그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며, 지금 보여주고 계신 정론직필의 꾸준한 노고를 독자들이 곧 이해하고 오해를 풀 것이라 믿습니다.』

MBC 보도국 주말뉴스부장 윤용철씨 명의로 보내온 답변은, 자신들의 보도로 인해 괜한 오해를 받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거 진짜 ‘개가 풀 뜯어먹고 있는 얘기’다.

직접 당사자인 해남신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왔고, 거듭된 해남신문의 사과요구에 올해 들어서야

『작년 11월 14일 뉴스데스크에 보도된 <절반이 법정에>라는 제하의 기사로 인해 해남 지역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주간 해남신문사>가 뜻하지 않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저희 취재팀은 문제가 됐던 해남군수의 발언이 현장에 있던 해남 지역 언론사 기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해당 보도를 총괄 지휘했던 책임자로서 불찰과 오해로 인해 <주간 해남신문사>가 입었을 피해를 생각하니 심히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라고 사과말을 좀 더 구체화했다.

▲ 서울 여의도 MBC사옥 ⓒ미디어스
해남신문 식구들은 MBC의 이런 사과 메일을 받고 받아들이고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기로 했다. 실추된 해남신문 명예를 생각하면 아닌 말로 해당 프로그램에 자막으로라도 MBC 차원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어야 할 일이었으나 마음만 좋고 힘도 없는(?) 주간 지역신문이라 ‘사과’라는 말 한 마디에 넘어가 주기로 한 것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MBC는 우리나라 3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다. 자신들이 잘못했으면 탁 털어놓고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어야 옳다. MBC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없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PD수첩이나 그동안 MBC가 해온 권력 비판과 감시기능을 폄훼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MBC가 중앙 단위에서 비판, 감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건강한 풀뿌리 지역신문들은 지역 단위에서 그 구실을 하고 있다.

제대로 인정받고 비판 기능을 해온 방송일수록 작고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써주는 여유로운 모습을 기대했다면 지나친 기대였을까?

MBC 해명 중 또 하나 우스운 것은 ‘해남신문’이라는 신문이 있는 줄도 몰랐고, 전체 신문을 통칭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요즘 어느 시군을 가도 그 지역 이름을 딴 풀뿌리 주간신문들은 한 개 이상씩 있다. 이것조차 몰랐다고 해서야 뉴스를 만드는 이들의 게으름의 소치이고, 편하게만 보도하려는 안일무사한 정신의 발로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바른지역언론연대가 제기했던 문제도 우리나라 굴지의 방송사에서 지역신문이라고 너무 얕잡아본 사안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MBC가 중앙정부가 분탕질치는 모습을 비판하고 감시한다면 지역 권력 감시와 비판은 지역신문과 방송들이 하고 있다. “지역에서 제대로 무엇 하나 할 수나 있겠어?” 하는 생각보다 지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길 바란다. 지역이 제대로 살아야 중앙, 아니 서울 지역, 수도권 지역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기회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각자 가슴속에 커다란 소우주를 품고서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그 소통과 공유를 바탕으로 연대의 틀을 마련하여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고자 합니다.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의 필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죠. ‘작은 언론’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세세한 소식, 아름다운 이야기, 변화에 대한 갈망 등을 귀담아 들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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