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용하 홍익대 총학생회장님.

저는 한겨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허재현이라고 해요. 일전에 저와 통화 한번 한 적 있지요? 미안해요. 이번 일로 정말 마음 고생이 심할 텐데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대뜸 전화해서 이것 저것 캐묻고 전화를 끊었던 그 때 그 기자에요.

목소리 참 친절하더군요. 한겨레 기자라고 하면 퉁명스럽게 받을까봐 걱정했었거든요. 우리가 요즘 학생들에 대해 썩 좋게 보도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제 전화를 불편해할까봐 걱정했었어요.

그런데 학생은 정말 친절했고, 오랫동안 제게 최선을 다해 상황을 설명해주려고 했어요. 그 순간 학생에게 품었던 얼음같은 편견이 확 녹아버리고 말았어요. ‘아. 이 친구의 이런 성실함. 참 좋다. 정말 학생들에게 인기 많겠구나.’ 생각했었어요.

▲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사실 저도 화가 나 있었어요. 전화 다이얼을 누르던 그 순간까지. ‘어떻게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 편에 서기는커녕 되레 학교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며칠 동안 제 머릿속에 실타래처럼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엉켜 있었어요.

그래서 뭔가 사실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했었어요. 혹여 제 목소리에 그런 불편했던 마음이 묻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릴게요.

서론이 너무 길었어요. 제가 이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배우 김여진씨의 글을 보고나서에요. 기자라서 늘 딱딱한 글만 써대는데.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편지’만큼 좋은 게 있었구나. 잠시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어서에요. 좀 뜬금없지만 이해해줄래요. (저, 누구에게 편지 써보는 건 대학생 때 좋아했던 선배에게 해보고 처음이에요.)

기계적 중립의 오류

학생과 통화하면서 느낀 건. ‘이 친구. 참 합리적이구나.’였어요. 사람들이 그러지요? ‘왜 학교 편만 드냐’고. ‘구사대. 아니, 구학대 아니냐’고. 저도 이런 얘기만 들어왔기 때문에 학생이 이상한 친구는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웬 걸. 전화해보니 전혀 그런 친구가 아닌 거에요.

학생은 학교 쪽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으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았어요. 얘기를 해보면, 어느 한 쪽의 입장을 편들지 않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 요즘 20대들은 이런 특징이 있구나. 우리의 20대는 ‘울컥’해서 무조건 약한 사람들 편만 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조금 부끄러워졌어요.

하지만 전 이런 얘기도 같이 해주고 싶어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답니다. 그래서 가끔은 기계적 중립이 진실을 가리는 도구가 되기도 해요. 갑과 을이 싸울 때, 반드시 각자 다 변명을 하게 마련인데 그거 다 평등하게 들어주다 보면 어느 쪽도 잘못한 사람이 없게 돼요. 누구도 벌어진 일에 책임을 질 수 없게 되지요.

게다가 또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누군가는 늘 거짓말을 준비해요.’ 기계적 중립을 지켰을 때 진실이 은폐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경우에요. 그래서 진실 앞에서는 늘 긴장해야 해요.

지금 학교 쪽의 얘기와 노동자의 얘기가 좀 다른 부분이 있어요. 특히 임금과 관련한 부분이지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좀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먼저 의심해야 할 대상은 전 당연히 학교 쪽이라고 생각해요. 권력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기 때문이에요. 사용자와 노동자. 그것도 하청업체 노동자 사이의 관계는 절대 평등할 수가 없어요. 학생들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고 다만 중재를 서려고 한다’고 하지만 왜 결과적으로 학교 쪽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해요.

▲ 홍익대 총학생회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의 학내 시위를 막아 서고 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농성사태의 본질

학생회장은 제게 ‘어머니들의 임금이 낮은 것은 사실이고 이게 개선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 말에 진심이 느껴졌어요. 꼭 그 약속 지켜주길 바라요.

하지만 하나를 더 봐줬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갑과 을의 임금싸움만은 아니에요.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비정규직 제도와 관련 있어요. 학생들은 이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싸움이 왜 일어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봐요. 학생의 설명대로, 12월 말 임금협상이 결렬 돼서? 학교는 5.1%의 급여 인상을 승인했는데 노동자들이 이걸 거부해서? 그래서 홍익대가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설명이 될 수는 있지요.

하지만 지금 싸우고 있는 어머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에요. 이번의 갈등이 대충 풀린다 해도 이 분들은 내년에 또 한번 고용 계약을 맺어야 해요. 그 때는 어떻게 될까요. 이번 싸움에 동참했던 분들이 과연 제대로 고용 갱신을 할 수 있을까요.

학생께서 어머니들께 한번 물어보세요. ‘굳이 점거농성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아마도 제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해주실 거에요. 또 학생께서 학교에 한번만 물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왜 이분들을 용역업체에 떠맡겨 비정규직으로 둬야 하는냐’고요. ‘홍익대가 청소 노동자 월급 80만원도 못 줄 정도로 가난한 학교냐’고요. ‘왜 학교가 (용역업체만의 문제라면서도) 청소노동자들을 도우려는 학생들은 탄압했냐’고요. ‘파견근로자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해 학교는 얼마나 노력을 했냐’고요.

왜 이런 걸 학교에 물어보지는 않고, 청소 노동자들에게 ‘월급 5.1% 인상해준다는데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냐’고만 묻는 건 뭔가 잘못 됐어요.

외부세력이 농성을 도우면 안된다?

학생은 제게 ‘어머니들의 싸움을 돕고 싶은데 민주노총이 개입해서 싫다’고 하더군요. 전 이것도 잘못 생각한 거라고 봐요. 민주노총은 이 어머니들이 선택한 상급 노조 단체에요. 어머니들이 원하는 분들이에요. 정말 어머니들을 돕고 싶다면, 어머니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건 어떨까요. 어머니들 혼자서만 싸우는 게 그 동안 얼마나 힘에 부쳤으면 외부 세력을 불러들였겠어요. 그 생각을 왜 못해요. 어머니들이 다시 예전처럼 외부단체 도움 없이 혼자서 싸우면 학생께서 끝까지 어머니들을 도울 건가요. 그거, 아니잖아요. 학생도 언젠가는 도서관에 가서 취업준비도 해야 할 거잖아요. 어머니들이 청소하는 바로 그 도서관에서요.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들과 헤어질 거잖아요.

학생회장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학생은 참 합리적인 친구에요. ‘나를 뽑아준 학생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총학생회장이기 때문에 청소 노동자들 편에 설 수 없다’고 했지요? 그런 자세 참 훌륭해요. 정말 홍익대 전체 학생들을 대표할 만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모든 대표자들이 꼭 지지자들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건 아니에요. 때론 나의 지지자들이 ‘틀린 요구’를 한다면 그들을 설득하면서 다른 길을 걷기도 해요. 그게 가끔은 옳을 때가 있어요. 오바마를 봐요. 미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부자들만을 위한 의료보험제도 다 뜯어고치잖아요. 룰라를 봐요. 수많은 중산층 지지자들이 ‘퍼주기’라고 비난했는데도 빈민들에게 식량을 무상공급 했잖아요.

모든 국민의 대표자인 오바마와 룰라가 왜 이러겠어요.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학생은 제게 ‘어머니들을 돕고 싶다’고 했어요. ‘청소 노동자를 돕는 게 옳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학생들을 설득해보려고 좀 더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각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어머니들을 돕는 걸 반대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설득해 봐요. ‘당신들이 반대하는 건 알겠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번엔 어머니들을 좀 도와보자’ 호소해보면 어떨까요.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학생총회같은 것도 열어서 투표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에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게 있다면, 학우들을 설득해 봐요. 생각보다 많은 홍익대 학생들이 학생회장의 편이 되어줄 거에요.

우리의 20대, 당신들의 20대

저는 학생을 ‘철없는 20대’라고 비난하지 않아요. 학생은 분명 저의 20대보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거든요. 어른들은 홍익대 총학생회를 보면서 화내고 있지만, 사실 이런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사회를 만들고, 학생들이 다른 약자에게 눈 돌릴 틈도 없이 살게 만든 건 바로 이 어른들이거든요. 저는 이 어른들도 함께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생도 한번쯤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왜 이 어른들이 우리를 비난할까. 무엇이 옳은 것일까. 무엇이 정의일까.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눈에 왜 자꾸 눈물이 고일까요. 뭔가, 슬퍼요. 홍익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요. 학생이 여진씨 앞에서 울먹였던 때도 저와 비슷한 심정이었겠죠.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이 슬픔 때문에….

저도, 학생과 꼭 밥 한 끼 먹고 싶어요.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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