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결과, 혹자에겐 충분히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마이 프린세스>의 성공은 김태희의 망가짐이 가져온 성과였습니다. 명문대 출신 미녀스타. CF용 스타. 예쁘지만 연기는 못하는 인형 같은 스타. 김태희를 규정하고 있던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마프'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도로 다가옵니다.

미녀의 독한 변신은 무죄였다

자동차부터 휴대폰까지 모든 것을 만드는 대기업의 손자 박해영(송승헌)과 사라졌던 공주 이설(김태희)의 사랑을 담은 이 드라마의 미덕은 즐거움일 것입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설정만큼이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동화책에서 읽었을 법한 공주 이야기의 현대판일 뿐이니 말이지요.

'마프'는 과거 입헌군주제의 현대화를 다룬 만화 원작 드라마 '궁'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자와 공주가 바뀌고 여러 가지 설정들이 '궁'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신데렐라가 되어 입헌군주제 시절의 왕가를 재건하고 이끌어가는 과정 등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대한민국에 다시 왕가를 재건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내놓는다는 설정은 삼성이 조선 왕조의 후손들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전 재산을 내놓는 것과 다름없으니 현실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김태희와 송승헌이라는 조합이 과연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낼지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마프'를 찍기 전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는 완성도나 재미, 연기력까지 모두 평균이하라는 평가를 받으며 위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그런 위기 상황이 그들에게 '마프'를 절박한 반전의 기회로 만들었던 듯합니다. 송승헌에게서 특별함 감흥을 받기는 힘들었지만 김태희가 독하게 변하려 노력했음은 2회까지 방송된 드라마를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지요.

그동안 CF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그녀의 최대 무기였던 것과 비례해 도저히 넘어서지 못하는 연기의 벽은 그녀를 박제된 연기자로 한정시킬 뿐이었습니다. 그녀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평가하는 <아이리스> 역시 워낙 민망한 연기를 보였던 그녀였기에 성장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태희는 <아이리스>를 연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그 작품의 연출을 맡았던 양윤호감독의 <그랑프리>에 출연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변화는 찾을 수 없었고 여전한 한계만을 드러낸 채 김태희와 양동근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흥행 성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궁지에 몰린 그녀가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CF등 박제된 이미지로 연예인의 삶을 연장하는 데 어려움은 없겠지만 연기자 김태희로서는 끝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택한 '마프'는 망가짐의 미학이 주는 통쾌함으로 비로소 전환점을 찾은 느낌입니다.

'마프'는 초반 철저하게 망가진 공주 이설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지금의 어머니에게 입양되어 힘들게 살아왔던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라는 사실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삶속에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천스럽기까지 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여대생이 어느 날 갑자기 공주가 되어 화려한 궁전에 들어서게 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황당하면서도 공주를 꿈꾸던 많은 여성들의 로망의 현실화이기도 합니다.

짝사랑하는 미남 교수와의 로맨스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카이로에 가는 게 꿈인 철없는 여대생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 김태희는 독기 품은 연기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얼굴이 얼고 그런 모습들이 화면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음에도 스스로 망가짐을 선택한 미녀 스타는 이렇게 새로운 자신만의 영역에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드러나는 미보다는 자신에게서 찾기 힘들었던 연기자로서의 가치를 끄집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김태희의 망가짐은 그래서 의미 있고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프'에서 연일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망가진 김태희의 모습입니다. 굴욕처럼 다가왔던 연기 못하는 얼굴만 예쁜 연기자라는 그동안의 오명을 단번에 씻어 내기라도 하듯 철저한 망가짐으로 연기자 김태희를 찾아가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다 화장실로 직행하는 김태희의 모습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망가짐의 절정이었습니다. 눈물로 마스카라가 지워져 추한 모습마저 아름다움으로 채워 넣던 그녀가 추해보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마프'는 김태희의 드라마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MBC의 수목드라마는 1년을 훌쩍 넘어 2년 가까이 최악의 시청률을 경쟁적으로 갈아치우는 무덤 같은 시간대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김혜수를 전면에 내세운 <즐거운 나의 집> 역시 그 무덤에서 살아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주목받는 SBS 신작 <싸인>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망가진 미녀 김태희가 있기에 가능한 성적입니다.

망가짐의 미학이 초반 '마프'를 이끌었다면 3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화려한 궁궐 생활은 많은 여성들의 동경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말괄량이 캐릭터에 진지함을 가미해 <대물>의 여대통령처럼 한 나라를 대변하는 입헌군주제의 공주가 된 그녀의 변신은 진정 김태희의 연기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합니다.

코믹과 정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야 하는 '마프'는 김태희에게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작품일 듯합니다. 그저 짧은 CF 속 요정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살아 숨 쉬는 연기자 김태희로 자리할 수 있을지는 '마프'의 성공이 증명해 보일 듯합니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김태희의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그녀의 성장과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