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의 15주기가 지났다. 한 젊은 가수의 죽음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그의 노래를 문득 흥얼거리면서도 그의 이름, 그의 목소리는 기억 속에 가물거린다. 그가 남긴 많은 노래들. 그 노래들은 한결같이 나의 것인 양, 내게 하는 노래인 듯 가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가 만들거나 혹은 다른 누가 만들어 그가 부른 주옥같은 노래들은 아직도 최신 유행곡의 찬란함을 뚫고 가슴으로 찾아들고는 한다.

서른 즈음에, 누군가는 그 서른이 까마득한 풋풋한 나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서른이 언제 지났는지 회한이 가득한 연배일 수도 있다. 특별히 요절하지 않는 한 사람은 누구나 스물, 서른 그리고 마흔을 맞아 인생의 먼지를 켜켜이 쌓게 된다. 그렇지만 그 많은 나이들 중에서도 특히 서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른이면 완벽한 어른이 되는 나이다. 서른이면 이제 서서히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알게 되는 나이다.

그렇지만 막상 서른을 지날 때에 모두는 여전히 20대의 격랑을 고스란히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서른을 세상 가장 빛나는 그 서른을 무심히 지나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불렀고, 서른을 둘러싼 많은 연령들이 그 노래에 조용히 가슴을 묻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그의 죽음 말고도 세상에는 참 아깝게도 일찍 떠난 가수, 시인들이 있다.

1월 6일. 너무도 추운 때에 그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그 즈음을 기억한 탓인지 배철수는 요즘 가요에는 철학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노래를 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과 비통함은 세상에 그리 크게 공명하지 않는다. 무대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래와 춤이 그득하지만 그 자리 어디에도 김광석처럼 노래하는 가수는 없다.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을 통해서 전달되는 시대는 끝났다. 댄스음악의 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철수의 말처럼 요즘 가요계에는 철학까지는 몰라도 노래혼을 가진 가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김광석보다 더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김광석 같이 자기의 가슴을 덜어내어 노래하는 가수를 기다리는 일은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세상에는 더 많은 노래와 가수, 그룹이 넘쳐나지만 김광석이 노래할 때 그랬던 것처럼 숨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게 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가요는 제2의 한류 혹은 신한류라는 명찰을 달고 해외에서 성황이다. 세상은 장기불황과 대량 실업으로 전보다 더 많이 위로가 필요한데 노래는 위안보다는 흥청거림으로 그저 잊기를 권한다. 고통을 잊는 것. 그것도 분명 하나의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형제처럼 혹은 고해소의 사제처럼 마치 내 이야기를 들어주듯이 조곤조곤 노래하는 가수 김광석의 존재는 이미 사라진 지 15년이 되고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질 뿐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한다. 인생유전이란 말은 그런 뜻이며 지금의 아이돌 열풍도 언젠가 기세가 꺾이고 노래가 돈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만들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설혹 오지 않더라도 올 것이라 믿어야 한다. 놀러와가 마련한 세시봉 특집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겼던 것을 그런 징후라고 굳게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다시 송창식도, 또 다른 김광석도 세상에 다시 돌아와 무대를 빛내줄 것이라 상상을 한다. 그가 불렀던 <서른 즈음에>의 가사처럼 그런 그리움에 또 하루가, 그가 떠난 또 한 해가 더해졌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