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배트맨을 훌륭하게 소화했던 마이클 키튼의 출연작 중에 <데스퍼레이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포 앤 애프터>, <위험한 독신녀> 등을 연출했던 바벳 슈로더 감독의 1998년작인데, 마이클 키튼은 감옥에 갇힌 냉혹한 살인마로 등장하며 앤디 가르시아는 그를 뒤쫓는 형사로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앤디 가르시아는 마이클 키튼을 단순히 잡는 게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한 처지입니다. 그것도 반드시 생포해야만 합니다. 골수이식이 필요한 아들을 위해서. 즉 하필이면 살인마와 형사의 아들의 생체조건이 맞아떨어진 거죠. 이런 기구한 운명이 더해진 둘은 쫓고 쫓기는 필사의 추격전을 벌입니다. 완성도도 제법 괜찮고 특히 마이클 키튼의 연기가 끝내주는 영화니 한번 보셔도 좋습니다.

김윤진과 박해일이 주연한 <심장이 뛴다>는 처음에 이 <데스퍼레이트>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심장은 하나, 살려야 할 사람은 둘"이라는 카피나 대강의 줄거리, 그리고 예고편을 보니 비슷한 소재를 다룬 긴박한 영화로 느껴졌죠.

영어 유치원을 운영하는 연희는 숱한 자원봉사로 상도 받은 착하고 성실한 여성입니다. 그녀에겐 애지중지하는 딸이 하나 있는데 하필이면 야속한 세상이 심장병을 안겨줬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심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연희는 곧 딸을 보내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뇌사상태에 이른 아주머니를 병원에서 만납니다. 염치불구하고 가족을 설득해 심장을 이식받기로 하지만, 느닷없이 아들이 맘을 바꾸면서 일이 꼬이게 됩니다. 이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연희는 아주머니의 심장이 필요하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의 아들은 어머니를 살리고자 무엇이든 해보려 합니다.

심장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을 엄마 VS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뇌사상태에 이른 엄마를 위해 뭐든 해보려는 아들. <심장이 뛴다>는 나름 참신하고 기발한 대립구도의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데스퍼레이트>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심장이 뛴다>는 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죽어 마땅한 살인마를 구해내고자 안달하는 형사의 부성애에 입각한 영화입니다. 반면 후자는 모성애와 효심(?)을 각각 다른 인물에게 부여해 동시에 이야기 속으로 던져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양립할 수 없는 결말을 요구하기에 관객들로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감정이입이 극대화된다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즈음에 관객들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겠죠. 이를 잘만 활용하면 <심장이 뛴다>는 <데스퍼레이트>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은 영화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최상의 결과가 나올 때에 그렇단 얘기고, 실상은 썩 좋은 못한 영화로 그쳤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심장이 뛴다>는 예상을 한참 벗어나 지나칠 정도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분명 두 인물에게는 공히 사연이 있어 일종의 추격전의 양상을 띠어야 마땅한 소재지만, 전혀 그런 긴장감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아울러 굳이 '가진 자 VS 못 가진 자'라는 사회적인 신분계급의 구도로까지 확대했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뭐랄까, 이러한 설정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듯 보여 좀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에 걸맞은 진정성도 엿보이지 않고, 이래저래 시나리오가 참 허술합니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인데 드라마조차도 충분히 살아나질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제가 <황해>의 리뷰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대중예술에서는 기교가 감성보다 앞설 수 없다.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면 결국 대중의 반응은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감성이 지나치게 앞서게 되면 신파로 전락하게 됩니다. <심장이 뛴다>가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주인공인 김윤진과 박해일의 캐릭터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가족애가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기에 딱 좋은 소재죠. 결국 관건은 이 신파로 가득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인데, 그런 점에서 <심장이 뛴다>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제게 트라우마 비슷한 게 있어서 어머니를 다루는 영화에 유독 약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이 흐르기는커녕 눈시울조차 붉어지지 않더군요. 그만큼 시종일관 작위적이고 비약적인 전개로 흘러갈 뿐이라 감정이입을 할 의지가 도통 생기질 않았습니다.

보는 내내 과도한 신파로 인해 감정의 동요는 일지 않고 눈살만 찌푸려졌습니다. 설득력과 개연성도 한참 떨어지고 기본적인 캐릭터 묘사에도 안이합니다. 특히 박해일의 캐릭터를 망나니로 설정한 것이 그런데, 덕분에 술술 풀리긴 하지만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감정적인 연출로 일관합니다. 이를테면 <심장이 뛴다>의 대부분은 모성애와 효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혹시 논리와 이성을 들이미는 자에게 이 두 가지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며 얼버무릴 셈이었을까요? "당신도 저들의 입장이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기엔 억지와 과장이 심해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어요.

<주먹이 운다>에서 마지막에 대결을 펼치던 태식과 상환을 떠올려보세요. 두 사람 다 절절한 사연이 있어 관객이 어느 한쪽의 승리를 바라기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장이 뛴다>와 비슷한 설정이죠. 하지만 이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천지차이입니다. 신파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게 아니에요. 다만 얼마만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느냐에 따라 신파의 성패여부가 갈립니다. 차곡차곡 쌓아오다가 마지막에 터뜨리거나 그에 걸맞은 호소력을 갖춰야지, 앞뒤 잘라먹고 혼자서 심장이 터져라 내달려봤자 관객의 맥박은 평온함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천하에 둘도 없는 호로자식을 연기하던 박해일이 단연 돋보이더군요. 이 영화에는 좀 아까울 정도로... 김윤진은 <하모니>에 이어 또 한번 강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 등장합니다. 헌데 저는 아직까지도 김윤진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반신반의입니다. 발음이 그래서 그런지 감정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꼽는 김윤진 최고의 연기는 <쉬리>인데, 사랑하는 이의 총에 맞아 쓰러질 때의 표정연기가 심금을 울리더군요. 그 이후로 지금껏 <쉬리>에서와 같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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