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과 박해일이 주연한 <심장이 뛴다>는 처음에 이 <데스퍼레이트>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심장은 하나, 살려야 할 사람은 둘"이라는 카피나 대강의 줄거리, 그리고 예고편을 보니 비슷한 소재를 다룬 긴박한 영화로 느껴졌죠.
영어 유치원을 운영하는 연희는 숱한 자원봉사로 상도 받은 착하고 성실한 여성입니다. 그녀에겐 애지중지하는 딸이 하나 있는데 하필이면 야속한 세상이 심장병을 안겨줬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심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연희는 곧 딸을 보내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뇌사상태에 이른 아주머니를 병원에서 만납니다. 염치불구하고 가족을 설득해 심장을 이식받기로 하지만, 느닷없이 아들이 맘을 바꾸면서 일이 꼬이게 됩니다. 이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연희는 아주머니의 심장이 필요하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의 아들은 어머니를 살리고자 무엇이든 해보려 합니다.
전자는 죽어 마땅한 살인마를 구해내고자 안달하는 형사의 부성애에 입각한 영화입니다. 반면 후자는 모성애와 효심(?)을 각각 다른 인물에게 부여해 동시에 이야기 속으로 던져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양립할 수 없는 결말을 요구하기에 관객들로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감정이입이 극대화된다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즈음에 관객들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겠죠. 이를 잘만 활용하면 <심장이 뛴다>는 <데스퍼레이트>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은 영화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최상의 결과가 나올 때에 그렇단 얘기고, 실상은 썩 좋은 못한 영화로 그쳤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심장이 뛴다>는 예상을 한참 벗어나 지나칠 정도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분명 두 인물에게는 공히 사연이 있어 일종의 추격전의 양상을 띠어야 마땅한 소재지만, 전혀 그런 긴장감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아울러 굳이 '가진 자 VS 못 가진 자'라는 사회적인 신분계급의 구도로까지 확대했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뭐랄까, 이러한 설정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듯 보여 좀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에 걸맞은 진정성도 엿보이지 않고, 이래저래 시나리오가 참 허술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주인공인 김윤진과 박해일의 캐릭터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가족애가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기에 딱 좋은 소재죠. 결국 관건은 이 신파로 가득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인데, 그런 점에서 <심장이 뛴다>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제게 트라우마 비슷한 게 있어서 어머니를 다루는 영화에 유독 약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이 흐르기는커녕 눈시울조차 붉어지지 않더군요. 그만큼 시종일관 작위적이고 비약적인 전개로 흘러갈 뿐이라 감정이입을 할 의지가 도통 생기질 않았습니다.
보는 내내 과도한 신파로 인해 감정의 동요는 일지 않고 눈살만 찌푸려졌습니다. 설득력과 개연성도 한참 떨어지고 기본적인 캐릭터 묘사에도 안이합니다. 특히 박해일의 캐릭터를 망나니로 설정한 것이 그런데, 덕분에 술술 풀리긴 하지만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감정적인 연출로 일관합니다. 이를테면 <심장이 뛴다>의 대부분은 모성애와 효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혹시 논리와 이성을 들이미는 자에게 이 두 가지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며 얼버무릴 셈이었을까요? "당신도 저들의 입장이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기엔 억지와 과장이 심해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어요.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천하에 둘도 없는 호로자식을 연기하던 박해일이 단연 돋보이더군요. 이 영화에는 좀 아까울 정도로... 김윤진은 <하모니>에 이어 또 한번 강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 등장합니다. 헌데 저는 아직까지도 김윤진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반신반의입니다. 발음이 그래서 그런지 감정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꼽는 김윤진 최고의 연기는 <쉬리>인데, 사랑하는 이의 총에 맞아 쓰러질 때의 표정연기가 심금을 울리더군요. 그 이후로 지금껏 <쉬리>에서와 같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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