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은 여전히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조지 클루니의 주연작입니다. 사실 조지 클루니의 영화는 미국에서도 <오션스>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흥행에서 힘을 못 쓰긴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현재 채 10만 명의 관객을 넘기는 것도 힘들어 보이고, <쓰리 데이즈>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란 것은 예상 이하의 결과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미리 예측하고 그 결과를 인정해서일까요? 마케팅에서도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화인데, 하마터면 꽤 독특하고 이색적인 스릴러를 놓칠 뻔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아메리칸>은 스릴러이면서도 스릴러답지 않은 영화입니다. 또한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와는 더 거리가 먼 이질적인 영화지만, 그 덕분에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영화입니다.
이후 잭은 동료의 지시에 따라 이탈리아의 한 작고 외진 마을로 피신합니다. 아브루초의 카스텔 델 몬테라는 산악마을에서 잭은 사진기자로 위장한 채 지냅니다. 이윽고 동료로부터 임무를 또 한번 부여받는 한편으로 또 다시 창녀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재차 자신을 죽이려 하고, 그 와중에 클라라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잭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깊어져 갑니다. 결국 그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암살자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합니다.
이상의 줄거리만 보면 <아메리칸>은 영락없이 액션과 스릴러가 혼합된 영화 같습니다. 로맨스도 양념으로 가미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드라마나 느와르에 가깝습니다. "스릴러지만 스릴러답지 않다"고 한 발언의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메리칸>의 감독 안톤 코르빈은 으레 연상할 수 있듯이 액션에 의지하여 스릴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암살자로 살아오면서 늘 불안에 시달리며 황폐화된 잭의 영혼을 묘사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를테면 <아메리칸>은 <본> 시리즈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과는 대척점에 있습니다. 두 영화가 공히 액션에 극도의 생동감을 부여해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내세웠다면, <아메리칸>은 심리묘사에 공을 들이면서 차별화된 스타일로 극을 이끌어갑니다.
<아메리칸>을 보면 잭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톤 코르빈은 카스텔 델 몬테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풍경을 십분 활용합니다. 요컨대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말처럼, 잭이 가진 심리를 그 작고 조용한 고도(古都)와 확연히 대비가 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클라라와 잭이 소풍을 갔을 때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아메리칸>의 압권입니다. 아울러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여태껏 본 그의 그것 중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대사가 극히 적은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표정과 몸짓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면에 단점도 확연합니다. 우선 <아메리칸>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가 아니다 보니 관객의 입맛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외면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절제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꽤 심오한 연출방식을 고수하고 이에 걸맞은 소재도 덧입혔지만, 거기서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아쉽습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한계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게임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욕심이 과욕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도박을 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