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수사 드라마 <싸인>은 기대 이상의 걸작을 예감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첫 회 보여준 가능성은 충분했으니 말입니다. 그 누구와 맞서도 충분한, 연기력이 탁월한 배우들과 매혹적인 진실 찾기 게임은 드라마적 재미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법의학자 vs 원론적인 법의학자의 숨 막히는 대결

철저한 원칙주의자 국과수 부검의 윤지훈(박신양)과 지독하게 정치지향적인 법의학계 일인자 이명한(전광렬)의 대립은 드라마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너무 다른 지점에서 진실을 찾고 이용하려는 이들 간의 대립은 <싸인>을 긴박하게 몰아가며 그들이 펼치는 연기력 대결이 얼마나 흥겨운 재미를 던져주는지 만끽하게 합니다.

한류 스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죽음을 둘러싼 모종의 음모. 이를 숨기려는 조직과 있는 그대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이들과의 대립은 첫 회 <싸인>의 전부였으며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듀스 김성재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많은 부분들이 일치함을 느꼈을 듯합니다.

약대생 애인과 의문의 죽음. 거대한 힘에 의한 진실 은폐. 국과수 부검과정 등 <싸인>에서 다뤘던 사건은 故 김성재의 사건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범행 시인과 부인, 도피 등 그 사건을 둘러싼 의문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이는 여전히 잘 살고 있는 현실이 2회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질지도 기대하게 합니다.

<싸인>은 하이라이트를 편집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짧게 이어진 긴박한 진행은 결정적인 순간 62시간 전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유명 보이그룹 보이스의 공연모습과 함께 리더 서윤형이 갑자기 사라진 무대. 의문의 여자의 모습. 숨진 채 발견된 서윤형의 모습들이 순서대로 보이며 사건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유명 아이돌의 죽음으로 현장은 엉망이 되어 있고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현장 감식반 고다경(김아중)과 검사 정우진(엄지원)은 자신의 성격을 짧지만 강하게 남겨줍니다. CSI를 보고 감식반에 지원한 그녀는 대학병원 레지던트를 마다하고 감식반을 지원한 엉뚱한 존재입니다.

사건에 임하는 소속사 사장과 멤버들은 실제 사이가 나쁨에도 불구하고 칭찬하기에 급급합니다. 철저하게 사건을 은폐하고 함구하는 그들은 이상하기만 합니다. 결정적으로 서윤형이 숨진 분장실 CCTV의 테이프만 사라진 사실을 알고 타살을 직감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정치적인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 이명한과 원칙에 입각해 그 어떤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의학자 윤지훈은 사사건건 충돌하게 됩니다. 국회에서 노동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연사라 이야기하는 이명한과 타살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윤지훈의 대립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대결의 시작이었습니다.

단순 명쾌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서윤형 사건은 검사를 움직이고 국내 최고 로펌 회사를 이용해 국과수 부검을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이명한에게 맡기려는 모습을 보고 사건의 중대성을 깨닫게 됩니다. 윤지훈은 자신이 하기로 되어있던 부검을 이명한이 대신하게 되고 이 과정에 진실을 감추려는 거대한 세력이 있음을 알게 되고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입니다.

시체를 바꿔치기해 이명한이 아닌 자신이 서윤형 부검을 집도하게 됩니다. 부검실 앞에서 마주한 고다경은 어쩔 수 없는 수술에 합류하게 되고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윤지훈의 모습을 보고 편견을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윤지훈은 서윤형이 단순한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증거를 찾아내게 됩니다.

첫 회부터 화려하게 다가온 박신양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3년 동안 모든 활동을 멈춘 채 칩거 아닌 칩거를 해야 했던 그의 복귀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와 극한 대립을 하게 된 정치적인 법의학자 역을 맡은 전광렬을 악인 연기 또한 그의 탄탄한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박신양과 전광렬이 서로 대립하며 펼치는 연기 대결은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드라마의 재미이자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독특한 소재에 연기력이 탁월한 배우들이 펼치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싸인>은 최고의 드라마가 될 모든 조건을 가졌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잘 들어. 이대로 여기서 밖으로 나가게 되면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못 듣게 된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밝혀내는 게 우리 임무야. 어떤 개인적인 탐욕이나 언론의 압력, 대중적인 정서, 누가 간청을 하든 애원을 하든 이런 것들이 사건을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돼. 우리가 마지막이다.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마지막"

시체를 빼돌려 부검실로 들어선 윤지훈이 부검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고다경에게 했던 이 대사는 <싸인>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거대 권력에 맞서는 강직한 정의. 그 흔들림 없는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존재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찾고 원하던 진정한 영웅일지도 모릅니다.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타산적인 존재들만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회에서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려는 존재의 등장은 우리 시대가 원하고 바라던 것입니다. 강직한 법의학자 윤지훈을 통해 엉망이 되어버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싸인>은 최고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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