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시크릿 가든>은 2010년과 2011년을 잇는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각본, 연출, 음악, 연기, 소품, 배경, 촬영, 편집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특히 - 감히 평하자면 - <시크릿 가든>은 독특하고, 잘 구축된 캐릭터가 극의 전체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김주원과 길라임은 물론이고 조연들까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 또한 대단하긴 매한가지입니다. 하지원이 귀여워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단 한 번도 귀엽기는커녕 매력적으로 보인 적도 없었는데,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은 아이유를 보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네요. 현빈도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또 한 명의 미남'배우'가 등장했네요. 그 밖에도 개념 없는 스타의 표본을 보여주는 윤상현, '미존'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한 김성오, 하지원에 뒤질쏘냐 애교를 작렬하는 유인나, 심지어 김사랑마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시크릿 가든>의 최고 매력은 역시 현실과 동화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에도 어김없이 돈 많고 잘 생긴 재벌남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궁핍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 <시크릿 가든>은 기존의 드라마와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맘에 쏙 드는 이 드라마의 각 구성요소 중에서도 각본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게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으레 이런 주인공을 가진 드라마라면 동화처럼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게 거의 정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여자 없이 못 살아서 집안의 반대쯤은 사뿐히 즈려 밟고, 여자는 또 이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상처를 극복하고, 그렇게 둘은 사랑을 이루고, 여자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팔자를 고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거죠.

어차피 드라마든 영화든 현실도피가 중점이니 철저히 대리만족을 심어주려고 하는 성격이 강하기 마련입니다. 간혹 철딱서니 없고 나이만 먹은 어른들이 이런 드라마에 빠져서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됨됨이 자체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드라마 자체야 한낱 유희거리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투적인 설정에 질려서 드라마를 외면하던 제게 <시크릿 가든>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우선 싸가지를 제대로 말아 드신 백화점 사장 김주원. 재벌에 나쁜 남자 컴플렉스를 유발하는 인자를 투여한 캐릭터지만 <시크릿 가든>은 이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변이를 가했습니다.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귀족임에도 어쩌다 보니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길라임을 좋아하게 됩니다. 여기까진 뻔할 만큼 흔하디흔한 드라마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김주원은 길라임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걸 포기하려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럴 생각조차 없어요.

참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우리가 길들여진 대로라면 이 대목에서 김주원은 가출을 해서라도 길라임과 동거를 하든 뭘 하든 해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야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둘이 사랑을 이루는 동화가 펼쳐지는 거거든요. 하지만 이놈의 자식은 정말 뻔뻔할 만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내가 널 좋아하긴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진 걸 다 포기해야겠어? 그건 안 될 말씀이지" 뭐 이런 식이에요. 심지어 "넌 그냥 내가 질릴 때까지 옆에 있다가 인어공주가 그랬듯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면 되는 거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참말로 기가 찰 노릇이죠.

이 인간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쁜 놈인 건지, 아니면 순수하다 못해 자신이 무슨 언행을 일삼고 있는지, 그래서 그게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준다는 걸 모르는 건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원은 엄마한테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면 무작정 울음부터 터뜨리는 철부지 아기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악의 없는 자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뭔가 요구를 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모른 채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이죠.

다음은 터프한 직업과 달리 상당히 깜찍한 우리의 라임이. 1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된 길라임은, 그래서 더 악착같이 험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오면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부모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절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여자였죠. 돈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멋진 여자. 그런 길라임이 한 남자를 만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몹쓸 놈의 이름은 바로 김주원.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여자가 이 남자 앞에만 서면 초라해집니다. 아마 길라임도 그를 좋아하게 됐나 봅니다. 누군가의 옆에 서고 싶어질 때면 자꾸만 자신과 그 사람을 비교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그(녀)의 옆자리에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 그럴 자격이 있는지, 행여라도 그(녀)가 날 부끄러워하지는 않을지, 주변에서 비웃지는 않을지 등등... 온갖 상념이 스스로를 자격지심으로 몰아가는 법입니다. 한 번도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던 길라임도 김주원을 만나면서 그런 과정을 겪습니다. 그게 사랑이란 감정이 인간에게 던지는 마력입니다.

어쨌거나 길라임은 김주원이라는 캐릭터가 그렇듯이, 여타 드라마처럼 김주원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으레 이런 경우에는 최소한 어느 한쪽이 애절한 사랑앓이를 하는 게 공식처럼 되어있는데, <시크릿 가든>은 길라임마저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김주원 사이에는 시쳇말로 '넘사벽'이 존재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남자 잘 만나서 팔자 고치는 판타지 속의 여성이 되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 김주원과 길라임이라는 두 캐릭터의 공통점이 뭘까요? 바로 동화와 현실의 타협입니다. 앞서 드라마든 영화든 현실도피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리만족에 중점을 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허구한 날 대한민국의 드라마란 드라마에는 죄다 재벌이 등장하고, 재벌과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겉으론 아닐지라도 누구나 신분상승의 욕구를 내면에 감춰두고 있는 법이니까요. 물질에 일말의 미련도 없이 초탈한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요?

이것을 이뤄주고자 드라마는 매번 동일한 설정과 결말을 반복 재생산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잘 먹히거든요.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것에 질려서 드라마라면 치를 떨었는데, <시크릿 가든>은 무책임한 동화를 남발하지 않는 대신에 현실과의 적절한 혼합을 보여줬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김주원이 길라임을 좋아하면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나, 김주원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밀어내려고 하는 길라임이나, 전에 없이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무위도식도 가능한 재벌이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혜택과 특권을 모두 버린다니, 정신이 나갔습니까?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가정을 해보세요. 여러분이 집인지 궁궐인지 구분도 안 되는 집에 사는 재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모든 걸 다 버리고, 가족마저 버리고 이틀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랑 평생을 함께 하시겠습니까?

네,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랑에 대해 너무 염세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우리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합시다. 예전에 한 케이블 티비에 수십 년 동안 상류층 자제를 중매한 아저씨가 나온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이 딱 잘라 말씀하시더군요. "드라마에 나오는 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그 오랜 세월을 중매하시면서 평범한 여성과 결혼하는 남자는 딱 한번 보셨답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사랑의 숭고함과 경건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의 믿음과는 별개로 현실이 그렇다는 걸 강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왜 동화가 국경과 인종과 세대를 넘어서 읽혀지고 있을까요? 왜 막장 드라마가 사랑을 받을까요? 이게 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눈만 돌리면 어디에나 참으로 아름다운, 신분마저 뛰어넘는 사랑이 비일비재하다면 굳이 동화를 읽을 필요도, 막장 드라마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천사가 있다면 악마도 있어야 하고, 히어로가 있다면 빌런도 있어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길라임 또한 현실주의적인 캐릭터입니다. 이건 좀 민감한 사안인데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여자들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동시에 레이디 퍼스트를 요구한다" 물론 모든 여자분들이 그렇다는 얘긴 절대 아니지만, 여자가 남자 잘 만나서 팔자 고쳐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하면서도 반대의 경우는 보기 싫다는 건, 결국 모순입니다. 사회적인 인식이 어쩌고를 논하기 전에 스스로조차 그걸 수용할 수 없다면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사교육의 폐해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도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극단적인 비판의 논조로 적은 것이 아니니 부디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길라임은 자라온 환경 덕분인지 자기주체성이 강한 여자입니다. <시크릿 가든>의 초반에 김주원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수라상을 받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죠. 정확한 대사는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드라마에 꽂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너한텐 세상이 동화로 보이지? 모든 집의 식탁에 촛대와 와인이 있을 것 같지?" 이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길라임은, 더 나아가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에 사로잡힌 드라마를 지양한다는 것이 대번에 드러납니다. 단박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어쩌면 길라임은 김주원의 곁에서 잠시 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되레 피하려고 했죠.

이렇듯 <시크릿 가든>은 여전히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현실과의 접점을 보다 두텁게 했습니다. 로맨틱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동화를 인용하기도 하지만 근본에는 현실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회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애가 타고, 스포일러고 나발이고 다 괜찮으니 결말이 알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무책임한 해피엔딩이라면 질색이지만 길라임과 김주원의 사랑이 애틋하게 이어지기를 기원하게 만들 정도로 사로잡았습니다. 미친 놈처럼 티비를 보며 실실 웃어대고, 사춘기 소녀라도 된 듯 가슴 설레게 만들 정도로 천진난만한 드라마입니다.

도대체 각본을 누가 썼나 찾아봤더니 <프라하의 연인> <온 에어> 등의 김은숙 작가이더군요. 게다가 연출도 세 편 모두 동일한 신우철 감독이라 더욱 반색했습니다. 두 편 모두 좋아했던 드라마고, 특히 <프라하의 연인>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열광했던 드라마거든요. 지난주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허세가 있어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둬주시길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