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크게 비상한 한국 축구는 2011년 시작부터 큰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 그 무대입니다. 1960년 이후 무려 반세기가 넘는 51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던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그 한을 풀고 진정한 아시아 최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차두리 등 유럽파이자 경험 많은 선수들 그리고 손흥민, 구자철, 윤빛가람 등 신예 선수들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우승 목표 달성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승을 위해서는 몇 가지 벽을 넘어야 합니다. 전술, 약점 극복 등 내부적인 벽도 있겠지만 그동안 아시안컵 우승 도전에 실패했던 요소들, 즉 외부적인 벽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모래 바람' 중동의 거센 도전, 그리고 텃세를 이겨내야 우승을 보다 쉽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중동 팀들의 도전이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중동에서 대회가 치러져 조광래호 입장에서는 더욱 굳은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다.

▲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이란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의 박지성과 기성용이 실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에서 중동 팀에 유독 약한 면모를 보여왔습니다. 분명히 좋은 전력을 갖췄음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중동에 발목이 잡혀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1956, 1960년 1,2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이후 중동 팀과 만난 자리에서 탈락의 쓴맛을 잇달아 맛봤습니다. 1972년 태국에서 열린 5회 대회에서는 이란과 결승전에서 만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로 패해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이어 1980년에는 쿠웨이트와 결승에서 만나 0-3으로 완패하며 고개를 떨궜고, 198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에서 대결을 벌여 승부차기까지 승부를 끌고 갔지만 역시 3-4로 패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잇달아 진출했지만 덩달아 중동 팀의 실력이 급상승한 1990년대에도 중동 징크스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장 정점을 찍은 대회는 바로 1996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을 때였습니다. 1992년 대회에는 실업팀으로 팀이 급조돼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던 한국은 어느 정도 갖춰진 국가대표로 대회에 나서 우승을 목표로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홈팀 아랍에미리트와의 예선 1차전에서 1-1로 비기며 불안하게 출발하더니 3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는 결국 0-2로 패해 조 3위 와일드카드로 8강에 오르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8강에서 한국은 이란과 만나서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내주는 어이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다 결국 2-6 치욕적인 참패를 당하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 경기 후 감독과 선수 간의 불화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결국 박종환 감독이 물러나고 이에 대한 충격 여파가 오래 가는 상황을 맞이해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2000년 레바논에서 열린 대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2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서 성과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당찬 마음가짐을 갖고 대회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중동의 벽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별 예선 3차전에서 쿠웨이트에 졸전 끝에 0-1로 패한 한국은 두 대회 연속 조 3위로 겨우 8강에 올라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이란을 꺾고 4강까지는 올랐지만 4강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1-2로 져 또다시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허정무 감독은 결국 경질됐고, 역시 이에 대한 충격 여파도 대단했습니다.

2004년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8강전에서 만난 이란전 패배가 또 한 번 발목을 잡았습니다.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팀을 모두 만나 2승 1무 조 1위로 모처럼 쾌조의 8강행을 이뤘던 한국은 8강에서 또다시 이란과 만나 접전 끝에 3-4로 패해 상승세가 꺾이고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특히 알리 카리미 한 명에게만 해트트릭을 내주며 지금도 이란 축구팬들로부터 2-6 참패와 더불어 한국 축구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07년 동남아시아 4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중동 징크스는 계속 됐습니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 예선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뒤 2차전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김두현이 선제골을 넣고도 이를 지키지 못하며 1-2, 불의의 일격을 당해 탈락 위기에 몰렸습니다. 다행히 인도네시아를 꺾고 8강에 오른 한국은 8강전에서 이란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겨우 따돌리고 4강에 올랐지만 복병 이라크를 승부차기 접전 끝에 벽을 넘지 못하고 우승 꿈을 또다시 접어야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중동 팀과 4차례 만났지만 공식 결과로 놓고 보면 3무 1패의 부진한 성적을 낸 끝에 고배를 마셔야 했고, 핌 베어벡 감독은 이전의 박종환, 허정무 감독처럼 짐을 싸야 했습니다.

▲ 한국축구 아시안게임 결승진출 좌절. 23일 광저우 톈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와의 4강 연장 후반 한국선수들이 실점 후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최근에도 중동 징크스는 있었습니다. 바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였지요. 어느 정도 승승장구를 하면서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4강전에서 아랍에미리트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우승 꿈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바로 4년 전이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라크, 이란에 져 메달도 건지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아시안컵에서 중동 팀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어떤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기간에 대회를 치르는 단기전에서의 여러 가지 변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보고 있습니다. 평가전이나 장기간 시간을 갖고 경기를 펼치는 월드컵 예선과 다르게 1달이라는 시간에 잇달아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대로 경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상대 페이스에 휘말리면서 결과적으로 경기 패배라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회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돌발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는 고참 선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우승의 한을 풀려면 그러한 기본적인 요소들부터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 축구 최강국이라 해서 내부적으로는 아시안컵을 쉽게 본 시각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질 때마다 이에 대한 도를 넘는 질타가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코 아시안컵은 쉬운 대회가 아닙니다. 대륙을 대표하는 최강국 타이틀이 월드컵 본선 출전만큼이나 상징성이 강한데다 이를 바탕으로 바라보는 세계 축구계의 시각도 비중 있게 보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시안컵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고, 여기서 큰 일을 저질러보고 싶은 팀들의 정예화 현상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단 한 팀도 본선팀을 배출시키지 못한 중동 팀들은 이번 대회를 명예 회복의 장으로 여기고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한국은 더 단단한 각오로 대회에 나서야 할 것이고, 특히 중동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침대 축구'같은 황당한 상황들, 심판 텃세 등에도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선수 구성 면에서 역대 최강이라고 하지만 결코 중동 팀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조광래호가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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