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오늘을 즐겨라 새해 첫 방송은 또 마라톤이었고, 또 이봉주였다. 이미 이봉주 선수만 해도 세 번째 출연이고 자연 마라톤 역시 그렇기 때문에 적이 실망스럽다는 선인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간에 우연히 생긴 일만 아니라면 정말 식상한 마라톤의 반복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실수가 만들어낸 아주 따뜻한 장면 하나로 오즐은 오랜만에 일밤의 오랜 코드인 사람의 감동을 짧지만 진하게 안겨주었다.

오즐은 이봉주 선수와의 마라톤에 대단히 큰 집념을 가진 것 같다. 이번으로 세 번째인 마라톤 대결이 몇 달의 간격을 둔 것도 아니고 불과 몇 주 만에 이뤄진 것이 스포츠 예능으로 전환한 오즐의 아이템 고민의 일단을 엿볼 수도 있다. 처음엔 남녀 아이돌과의 이어달리기 대결을 벌이고 얼마 전엔 마라톤이라고 하기는 짧은 거리를 오즐팀과 소녀시대가 겨루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돌이 아니라 이봉주 선수의 모교인 천안 성거초등학교 180명과 맞붙었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세 번째의 마라톤 아이템에 큰 기대를 걸 수는 없는 일이라 다소 뚱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각 100m를 달리는 초등학생들의 악착같이 달리는 모습들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초등학생 180명에게 주어진 거리는 100m. 아주 빠르거나 느려도 대부분 20초의 시간이 그들이 마라톤에 참가하는 시간의 전부이다. 그것도 편집을 거쳐 불과 몇 초만이 화면에 잡힐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참 열심히 때론 악착같이 온힘을 다해 달렸고, 그 모습이 조금씩 더해져서 점점 큰 감동으로 다가섰다.

녹화 당일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이라는데 어린 친구들은 그런 내색도 없이 온 열정을 다해 달렸다. 때로는 뒤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앞지르기도 했던 모든 역전, 재역전의 순간은 그래서인지 모두 이 꼬마 친구들이 해냈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새해 벽두를 질주하는 모습만으로도 흐뭇한 일인데 경기 후반부 정확히는 15km 지점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진행 요원의 실수로 한 어린이가 자기 몫을 달리지 못하고 그만 중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특이 100m를 진행한 지점에 한 어린이가 서 있었다. 그러나 오즐 멤버들은 각 500m씩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바톤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다면 그 어린이가 500를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이특은 바톤 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달렸고, 머뭇거리던 어린이는 바톤과 상관없이 이특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100m의 짧은 구간을 달리기 위해서 미리 연습도 하고 추운 날씨에 도로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그대로 중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지점부터 다음 400m까지는 다음 주자가 없기 때문에 이 어린이는 100m를 넘겨서 계속 달려야 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이봉주 선수가 이 어린이 곁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쳤을 아이는 환한 모습으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뒤에서 달려오면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이봉주가 모든 상황을 다 알지는 못했겠지만 혼자 달리는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행복해졌다. 이봉주가 단지 달리기를 잘해서, 금메달을 따서 영웅이 아니라 그렇게 어린이의 상처받았을지 모를 마음까지 달리는 와중에 신경 쓸 수 있는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이 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은 영하의 날씨도 순간 녹여버린 훈훈함이 화면에 가득했고, 이미 봄이 다 온 것만 같았다.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 올해 소망이 오빠가 때리지 않는 것이라며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던 그 아이에게 이봉주 선수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얼마나 상심했을까 생각하면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렇게 어린이들에게 진심어린 마음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진짜 영웅의 모습이었다. 금메달보다 오히려 값진 사람의 모습이고, 어른의 자세였다. 또한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참가했던 180명의 어린이들에게 그런 값진 교훈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방송출연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지는 추세 속에서 여전히 소수인 그들에 대한 편견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오즐 마라톤에 참가한 한 남매가 그랬다. 엄마가 파라과이 국적인 그 아이들에게 반 친구들은 놀려댔고 왕따를 시켰다. 국제 결혼한 누나를 둔 신현준이 그 심정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가슴 아프게 들었는지, 그 남매에게 새해 선물로 그 아이의 꿈인 파라과이 여행을 보내주었다. 그 역시 따뜻한 모습이었다. 오즐의 신묘년 첫 인상은 느낌표 같았다. 그리고 모처럼 일밤 같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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