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 고향인 봉하 마을로 돌아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돌연 농부로 변신한다. 대통령이 퇴임 후 서울에서 벗어나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이기에, 농부가 된 노무현의 변신은 언론과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농부 노무현은 농약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을 활용하여 해충을 없애고 농작물을 기르는 ‘생명 농법’을 고집하였기에, 그의 남다른 농사철학 결과물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 <물의 기억> 스틸 이미지

아쉽게도 농부가 된 노무현의 생태 농업 도전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못다 이룬 꿈은 그의 친환경적인 농사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현실이 되었고, 현재 봉하 마을은 친환경적이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재배, 수확하는 지역이 되었다.

봉하 마을의 논, 들판, 하천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움직임을 근접에서 포착한 이미지의 향연이 주를 이루는 다큐멘터리 영화 <물의 기억>(2019)은 오래전 논, 밭, 들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개구리, 두꺼비, 메뚜기, 사마귀, 우렁이 등은 물론 천연기념물 제199호 지정된 야생 황새까지 생생한 화면으로 만날 수 있는 진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처럼 봉하 마을 곳곳에 과거 농촌에서나 보고 만질 수 있었던 생명체들이 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친환경 농사를 통해 생태계 복원을 희망했던 노무현의 꿈이 있었다.

영화 <물의 기억> 스틸 이미지

생전 노무현은 봉하 마을 인근에 위치한 낙동강하구, 주남저수지, 우포늪, 화포천 등 자연 생태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생태계의 복원과 보존의 필요성을 힘주어 언급한 바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이것이 노무현의 철학이었고, 비전이었다.

이러한 노무현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물의 기억>의 카메라는 봉하 마을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생명들의 움직임과 다툼에 섣불리 개입하는 법이 없다. 모든 생명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바라보고 지켜보되,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자연의 순리에 맡겨버린 봉하 마을과 <물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요소는 ‘물’이다.

영화 <물의 기억> 스틸 이미지

생명의 근원이자 터전인 물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붙잡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물은 흐름을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간다. 이러한 물의 기운을 받은 생명들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얻고 계절을 따라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세상. 그곳에서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수많은 생명과 함께 숨 쉬며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공생하는 생태계를 꿈꾸던 노무현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정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순환시키는 물을 따라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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