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영화 관객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영화는 <트랜스포머>도,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도,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도 아닌 <디 워>였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는지 용광로를 녹여버리고도 남을 지경이었죠. 단, 앞선 세 영화에 비해 <디 워>는 긍정과 부정의 대격돌이 불러일으킨 희한한 현상이었습니다.

<디 워>는 이전에도 몇 차례 영화를 제작한 바 있던 심형래 감독이 절치부심하여 만든 회심의 역작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밀며 야욕을 내세웠는데, 영화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오죽했으면 100분 토론의 무대에 올랐을까요. 헌데 이걸 보면서 엉뚱하게도 평소에 흠모하던 진중권 씨에게 극히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중권 씨와 논리로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당연히 <디 워>의 진영에 선 분들은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분들이 아니니 급기야 억지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쯤에서 그만했으면 좋았을 것을 진중권 씨가 거의 조롱하다시피 되받아치는 걸 보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디 워>를 비교적 호의적으로 관람했던 제가 봐도 그들의 대응은 말도 안 되는 논리였는데 그걸 진중권 씨 정도나 되는 분이 조롱하고 있으니 보기가 좀 그렇더군요. 차라리 피식 웃으며 반박을 하지 않거나 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진중권 씨가 이성을 놓아버릴 정도로 비이성적인 대응의 연속이었다는 것이죠. 제가 이 말을 왜 하고 넘어가는지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라스트 갓파더>의 시사회 직후에 초토화된 몇몇 블로그에 대한 소문도 들었는데.. 그게 무서워서 재미없는 걸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마피아 조직의 보스인 돈 카리니가 후계자를 정하려 하는데 그 주인공이 난데없이 등장한 아들 영구랍니다. 돈 카리니가 경쟁조직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가 살던 시기에 낳은 아들이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니 그도 영구에게 조직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구는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나사가 한두 개는 빠진 듯 모자란 인물입니다. 부하들은 그가 영 미덥지 않지만 보스의 지시에 따라 영구의 후계자 수업을 맡으면서 좌충우돌하는 해프닝이 연속됩니다. 한편 영구는 그 와중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는데, 하필 그녀가 앙숙인 조직 보스의 딸이라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합니다.

이상의 줄거리를 가진 <라스트 갓파더>는 <대부>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혼합한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일각에선 그래서 "<대부>를 모독하는 짓이다"라고 하는 모양이던데, 이런 주장은 <디 워>의 옹호파들이 취하던 억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라스트 갓파더>는 어디까지나 코미디 영화에요. 게다가 돈 꼴레오네가 무슨 위인도 아니고, 유치한 설정일지언정 코미디 영화로서는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모독이니 뭐니 하는 발언까지 하면서 정색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라스트 갓파더>에서 <대부>와 연계할 수 있는 내용은 그게 전부입니다.

각설하고, 심형래 감독은 그야말로 개그계의 전설입니다. 최근 티비에 나왔을 때도 언급됐지만, 당시 어린이들이 뽑은 존경하는 인물에서 생존한 사람으로는 1위를 차지할 정도였죠. 제게도 심형래라는 이름은 이와 동일한 무게를 가졌습니다.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저와 연배가 비슷한 분들이라면 누구나 개그맨 심형래에 열광한 세대에 속합니다. 그래서 <디 워>의 차기작으로 <라스트 갓파더>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에 걱정이 앞섰던 것 이상으로 반가웠습니다. '영구'는 곧 심형래이자 그가 가장 잘하는 특장기이니 오히려 <디 워>보다 더 출중한 결과물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과연 20년 전쯤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방식이 여전히 먹힐는지 의문이었습니다. 10년이면 변한다던 강산이 이젠 1년이 멀다 하고 격변하는 세상에서 '영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에 대해 심형래 감독 왈, "슬랩스틱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코미디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가졌더군요. 일찍이 찰리 채플린이 증명했듯이 영구라고 반드시 안 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 아울러 심형래가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도전의 아이콘이 된 지금, <라스트 갓파더>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효과도 가진 셈입니다.

그러나 <라스트 갓파더>를, 미국을 배경으로 연기하던 영구를 보며 좀처럼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미디 영화라면 적어도 한두 번은 폭소를 터뜨리기 마련인데, 간간이 옅은 미소를 띄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어린 시절엔 이걸 보면서 빵빵 터졌던 게 사실인가? 정말 그랬었나?'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됐습니다.

<라스트 갓파더>는 이를테면 'The Very Best of 영구'쯤에 해당하는 영화입니다. 영구의 최고작이란 얘기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에 영구가 티비에서 큰 인기를 얻었을 때 보여주던 소위 '몸개그'가 극의 전체를 수놓습니다. 다시 말해 <라스트 갓파더>는 익숙해도 너무나 익숙한 모션의 연출이 시종일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제 기억으론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이 이전에 익히 보았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본다고 하기에도 불과 얼마 전에 티비에 출연하여 보여줬던 것이고, 그렇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익숙한 것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여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건 영구나 심형래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에 변해버린 제 취향 탓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익숙함과 동시에 달라진 관객의 취향에 부합하지 못하고 과거의 것을 답습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팬으로서 정말 안타깝지만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심심했던 것도 참 오랜만이었어요. 한편으론 영구가 지나치게 미국이라는 배경에 맞춰져 개량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에서 왔으니 어설픈 영어를 하는 건 바람직한 설정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에서의 영구도 말을 또박또박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죠. 그러나 심심찮게 터지는 '대사빨'도 가진 영구가 <라스트 갓파더>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합니다. 50년도 더 전에 무성영화에 등장했던 찰리 채플린처럼 말 그대로 순전히 슬랩스틱에만 의존하니 영구의 힘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영구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통한다는 것은 위안이 될 듯합니다. 제가 <라스트 갓파더>를 보는 내내 영화에 흥미를 잃는 바람에 틈틈이 주변 관객들을 살펴봤습니다. 평일 낮시간이라 그런지 객석의 절반도 차지 않았지만 개중에 어린 자녀들과 오신 분들이 많더군요. 정말 이상하게도 그분들 역시 저처럼 도통 웃지를 않으셨습니다. 대개가 40~50대로 보였는데, 제 앞측면에 계시던 분들은 정색모드로 일관하셨습니다. 반면 어린이와 20대 초반 이하의 관객들은 나름 재미있게 보는 듯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소리가 잦아들긴 했지만...

원인이야 무엇이든 저로서는 <라스트 갓파더>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그저 공허한 울림으로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미국 관객에게는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스탠드 업 코미디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바보 캐릭터로 보여주는 몸개그가 얼마나 환영을 받을지 의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반대로 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더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하비 카이텔이란 명배우도 출연했고, <사이먼 세즈, 퍼니셔>로 낯이 익은 존 피네트도 힘을 보태고 있으니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지 일단 기다려보죠. <워리어스 웨이>의 참패라도 만회해 줄지...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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