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승리했다. 사필귀정이다. MBC 연예대상에서 유재석과 박명수가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갈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상이 갔다. 한국에서는 엉뚱한 곳에 상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한 시상을 보면 왠지 통쾌한 느낌이 든다.

전날까지도 유재석 무관 가능성에 대한 기사들이 나왔었다. 독식의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석 이외엔 전혀 대안이 없었다. 강호동 이외에 이경규라는 대안이 있었던 KBS와는 그 사정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뜨거운 형제들>이 어느 정도만 호조를 이어갔어도 박명수가 올해 ‘MBC의 이경규’가 되어 대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유재석만 홀로 우뚝 섰다. 만약 유재석에게 대상이 가지 않았다면 이번 MBC 연예대상은 오명으로 얼룩졌을 것이다.

유재석이 자기만 자꾸 받아 죄송하다고 했는데, 본인이 독보적으로 잘한 것을 죄송해할 필요는 없다. 독식의 구도에 대한 책임은 유재석 프로그램에 필적할 만한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MBC나, 그와 비견될 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다른 이들이 분발할 일이다.

박명수의 최우수상도 반가운 일이다. 박명수는 올해 <무한도전>과 <뜨거운 형제들>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올 한 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겼던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뜨거운 형제들> 아바타 소개팅에서 시청자를 웃다 쓰러지도록 만든 괴력은 최우수상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그의 최우수상이 반가운 것은, 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나치게 냉대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위악적인 캐릭터 때문에 상당한 비난을 들었었고, 유재석의 그늘에 가려 인정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최우수상으로 인정받은 것은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 코미디언들이 창피했습니까? -

대상과 최우수상은 좋았지만 이번 MBC 연예대상은 여러모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상식이었다. 이번 시상식을 보며 MBC 코미디와 예능이 얼마나 저조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조잡하고, 정신사납고, 불유쾌한 시상식이었다.

초반에 수상자 명단을 전해주는 상황극을 나름대로 했지만 보는 입장에선 민망할 뿐이었다. 중간중간에 합창단이 나오는 것도 흐름을 끊었고, 전체적으로 맥 빠지는 진행이었다. 얼마 전 KBS 연예대상의 매끄러운 진행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KBS도 이수근이 아닌 이승기 최우수상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시청자가 뽑은 최고 프로그램상에 <무한도전>이 아닌 <세바퀴>가 뽑힌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였다. 투표를 했던 네티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MBC 측의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불유쾌했던 것 코미디언들에 대한 과도한 푸대접이었다. 자사 코미디가 방송3사 경쟁에서 졌다고 코미디를 연예대상에서 빼버린 것처럼 보였다. 코미디언들이 있을 자리에 탤런트와 가수들만이 넘쳐났던 것이다. 아무리 <하땅사>의 시청률이 낮았어도 이건 경우가 아니다. 어느 학교 졸업식에 학생들 성적이 낮다고 다른 학교 학생들을 데려다 앞에 앉혀놓은 형국이랄까?

만약 방송3사 통합 연예대상이라면 당연히 MBC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없겠지만, 이건 MBC라는 방송사의 자체 행사였다. 그렇다면 MBC 속에서 코미디라는 분과의 존재를 지켜줘야 했다. 시청률이 아무리 낮았어도 코미디 부문의 독자성을 인정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코미디는 인기 있으면 넣고, 없으면 버려도 되는 부문이 아니다. 이건 경제로 치면 기간산업이라고 봐야 한다. 버라이어티라는 응용부문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부문인 것이다. 설사 한국 육상이 세계 꼴찌를 한다고 해도 전국체전에서 육상종목을 빼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당장의 인기가 없다고 빼버리는 건 단견이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10년 설움을 겪으며 코미디를 하지 않고, 강호동이 ‘헹님아~’를 하지 않고, 박명수가 ‘우이씨~’하면서 내공을 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날 국민 예능인이 될 수 있었겠나. 아이돌이 당장 인기 있다고 그들만 대접하는 것은 책임 있는 방송사가 할 일이 아니다.

당장의 시청률 때문에 아이돌 섭외의 유혹을 받았으나, 끝까지 원칙을 고수했다는 <놀러와> 작가의 수상소감을 MBC는 새겨야 한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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