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도우리 객원기자]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여경’ 논란이다. 지난달에는 대림동에서 주취자를 제압하던 여성 경찰이, 며칠 전에는 통영에서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고 별다른 조치 없이 자리를 뜬 여성 순경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림동 여경에 대해서는 다른 경찰 관계자들이 합리적인 대응이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이번 통영 사건으로 또 ‘여경 무용론’이 불거진 것이다.

지금의 여경 무용론은 일차적으로는 ‘신체적 능력’ 프레임이다. 여성의 신체 자체가 범죄자를 통제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데 취약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때문에 여경이 사건 현장에서 남경이나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의존적인 대응을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치안은 곧 완력이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민갑룡 경찰청장은 어떤 경찰보다도 완력이 센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경찰 업무는 용의자 체포뿐 아니라 범죄 예방 및 수사, 관련 행정 업무 등을 포괄한다. 일선 경찰관들이 물리력을 사용한 범인 제압이 경찰 업무의 전부가 아니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래서 여경 무용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경 혐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여경이 등장한 지 70년도 더 넘었지만 ‘여경 무용론’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왜 여경 혐오가 지금에서야 불거졌을까? 그 배경에는 ‘청년 일자리’ 문제가 얽혀 있다.

여경 무용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해 경찰청 이성은 성평등정책담당관의 언론 인터뷰였다. 이 담당관이 경찰 업무에 대해 “실제로 힘쓰는 일이 필요한 직무는 일부에 불과”라고 한 게 논란이 되어 일주일 만에 그에 대한 해임 청원이 7만명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당 청원인이 제시했던 청원 사유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팔굽혀펴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함에도 경찰에 채용하고 있으며, 더 많은 여성을 채용하라는 논리 하나 없는 말을 ‘성평등 정책 담당관’이라는 사람이 경찰청이라는 조직 내에서 하고 있다”며 이 담당관을 비난한 대목이다. 그러니까 청원의 핵심 사유가 ‘여경 채용 확대 역차별’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경찰청은 ‘경찰청 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의 일환으로 2018년 하반기 여경 선발 비율을 직전 해인 2017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렸었다. 문제가 됐던 이 담당관의 인터뷰도 ‘2022년까지 여경을 전체 15% 수준으로 늘린다’가 주요 골자였다. 이 정책 목표에 따라 올해도 지난해보다 여경 채용 인원이 확대(460명에서 783명)됐고, 올해 경찰공무원 1차 필기시험은 4월 중순에 치러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대림동 여경 논란과 통영 여경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대림동 여경 논란에 대해 “멋있어서 여경 하려는 분들, 제발 다른 일 찾으세요”라는 경찰공무원시험 준비생 인터뷰가 보도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림동 여경 논란에 대해 발언한 바도 정확히 이 점을 겨냥한다. 하 의원은 본인의 SNS를 통해 “여경 불신을 해소하려면 부실 체력검사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며 의원실 차원에서 여경에 대한 체력검사의 기준을 강화할 것을 경찰청에 요구했었으나 답변이 부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워마드 척결’을 내세우며 20대 남성 지지층 확보를 공략 중인 하 의원이 여경의 신체적 능력 프레임을 통해 ‘경찰공무원 채용 공정성’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경찰청, 결국 그 수장인 민갑룡 경찰청장을 겨냥한 것도 채용 공정성 프레임을 통해 당파적 전선을 그으려는 셈이 드러나고 있다.

하 의원의 발언, 그리고 이 담당관에 대한 청원 모두 ‘채용 공정성’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채용 공정성’ 프레임은 다른 공정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사인 기사 ‘20대 남자 현상은 왜 생겼나’에서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에 대해 ‘맥락이 제거된 공정’으로 진단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채용 공정성’ 프레임은 여경 채용비율이 애초에 남경에 비해 매우 적은 것, 무엇보다 여경의 공적 필요성에 대해서 지우는 것이다. 특히 ‘남경들의 무능’에 대해 침묵한다.

여경 채용이 확대될 필요성은 당장 버닝썬 경찰 유착 사건, 스튜디오 성폭력 피해자 양예원씨에게 악플 수사 경찰관이 “전과자 양성이냐”라며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것만 봐도 시급하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성폭력 등을 대처하는 데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남경들을 지적하기 위해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영화 <걸캅스>도 디지털 성폭력 피해에 대한 남경들의 안이한 문제의식에 탓에 여경들이 나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줄거리였다.

여경 무용론을 주장하며 ‘신체적 능력’ 운운하는 연막탄을 그만 피워올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평가에 여성들은 동의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히려 채용 기준에서 강화해야 할 것은 ‘성인지 감수성 능력’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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