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인터뷰를 거절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교육청에 확인해보니까 곽노현 교육감 인터뷰는 못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오세훈 시장께서도 안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희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지난 24일 들려온 서울시 인터뷰팀의 대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얘기해주지 않다가 인터뷰 거절에 강한 유감을 표하자 담당자가 털어놓은 얘기였습니다. 오 시장이 바빴던 것도 아니고, 저런 이유를 들어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게 뭔가 언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답변이었습니다. 왜 오세훈 시장은 굳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의 대등한 인터뷰를 고집한 걸까요.

(지금 오 시장은 타 언론사와는 인터뷰하고 계십니다. 서울시에 그 이유를 묻자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덧글.서울시에서 이 글을 보고 직접 해명해 왔습니다. 서울시는, 곽노현 교육감께서 인터뷰를 거절했는데 오세훈 시장만 인터뷰를 하는 것은 TV토론을 앞두고 모양새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거절의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오해가 발생한 것이고, <한겨레>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거절한 것은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서울시는 <한겨레>가 다시 한번 오세훈 시장의 인터뷰를 요청하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알려왔습니다.)

▲ 조선일보 12월28일치 9면.
“오세훈, 보수층의 눈도장 받을 수 있을 것”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교육청이 추진하려는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나서자 그 이유를 놓고 뒷말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상급식 반대’는 오 시장에게 별로 이로울 게 없어보이거든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 ‘친서민’이미지를 쌓을 수 있는데도 이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오 시장이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그 존재감이 조금씩 떨어져 가던 오 시장이 여론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정치적 이벤트를 편다는 주장입니다. 시사 평론가 김종배씨는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당장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한 지지율은 떨어지겠지만 한나라당 자체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 오 시장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보수층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부터 1년간 오 시장의 경제 보좌관을 지냈던 선대인씨(김광수 경제연구소 부소장)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정치에 능한 분입니다. TV 토론을 통해 무상급식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선전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지와 미디어 정치에 익숙한 오 시장 다운 발상입니다.”

▲ 지난 2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시의회의 무상급식 전면 시행 조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허재현
순수해보이지 않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동

여러 정황을 놓고 살펴봤을 때, 오 시장의 이번 무상급식 관련 행동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 시장이 이렇게 전면전 치르듯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오 시장의 진심을 한번이라도 파악할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오 시장의 해명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대권 도전을 위해 ‘아이들 밥그릇’ 논쟁을 활용했다는 의혹을 떨쳐 버리려면 오 시장께서는 ‘무상급식’ 반대 논리를 좀 더 다듬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 시장께서는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여력이 안되는 것 뻔히 알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야권이 무상급식 정책을 들고 나왔다는 주장입니다. 부자 자녀들 밥값 줄 돈으로 가난한 학생들 더 돕고 학교 시설 개선하자는 주장입니다. 서울시에 그렇게 돈이 없다는 말인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단적으로 내년에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기 위해 서울시가 부담해야 할 돈은 700억원 정도입니다. 서울시 한해 예산 21조원의 0.3%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한강 르네상스 정책을 위해 1년에 쓰는 예산만 1조 천오백억원입니다. 여기서 700억원 줄여 아이들 밥값 마련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한강 르네상스가 꼭 필요한 사업이고 그래서 정말 돈이 없는 거라면, 부족한 예산을 늘리는 방법을 구사하면 됩니다. 2009년 서울시 회계연도 재무보고서를 보면, 서울시의 무능력으로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한 세금만 1조 1,800억원. 뻥튀기 예산을 세워놓고 쓰지 않은 돈만 1조 6천 4백억원이었습니다. ‘디자인 서울’ 정책에 참여하는 재벌건설가들 잔칫상으로 활용되는 ‘턴키 입찰 제도’만 뜯어고쳐도 한 해 3천억원씩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선 한 마디도 안합니다.

제가 취재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확인하면 할 수록 재정자립도 83.4%로 전국 지자체 1위인 서울에서 적어도 무상급식 문제만큼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즉, ‘무상급식 반대’는 합리적인 견해가 아니라 ‘오 시장의 고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오 시장을 직접 만나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무상급식 최초 실시한 합천군의 교훈

오세훈 서울 시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오 시장은 부분 무상급식을 시행하더라도 저소득층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 방법을 다 마련해 놓았다고 말 합니다. 주민센터에 가서 ‘무상 급식’ 신청하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취재해 본 현장에선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저소득층 아이들은 자신이 무료로 밥먹는다는 그 사실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단 동사무소를 가야 할 거고요. 본인이 직접 안가더라도 부모님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러 동사무소에 간다는 걸 눈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경험이 아이들에게 좋을 리 없겠지요.

하창환 합천군수를 얼마 전 만났습니다. 합천군은 2006년부터 부분 무상급식을 시행하다 2009년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시작한 곳입니다. 재정 자립도 12% 안되는 가난한 지자체입니다. 하 군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공짜로 밥먹는 아이들을 알게 되더군요. 그래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했습니다. 교육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아이들이 없어야 합니다.”

합천군의 한 초등학교 급식당에서 15년간 영양사로 일한 분께서는 제게 이런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부분 무상급식을 할 때였습니다. 한 부잣집 아이가 군의 지원을 받아 밥을 먹는 아이에게 ‘뒤에 가서 줄을 서라’고 명령을 하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 아이는 순순히 뒤에 가서 줄을 서더랍니다. 군의 지원을 받아 밥 먹는 아이가 스스로 공짜로 밥먹는다고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럴 리 없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1년 가까이 생활 하다 보면 그걸 알아채게 마련입니다. 이 영양사는 “현장에서 일해 보면 전면 무상급식이 왜 필요한 지 금방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만나고 다니는 학부모들이 대체 어떤 분들인 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자들이 쉽게 찾아내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왜 확인 못하는 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오세훈 시장은 지난 8월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 참석해 “무상급식 문제는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4개월만에 말을 바꿨다. ⓒ허재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월 서울시 의회에 출석해 “무상급식 문제는 예산의 문제라기보다는 합의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의회와 협의해 무상급식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셈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오 시장은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맹공격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각에서는, ‘5세,훈’시장의 괜한 ‘질투심’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 시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습준비물 무상지급 정책’이 야당이 추진해 온 ‘무상급식 정책’에 묻힐까봐 저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왜 오로지 아이들 공부 열심히 하라고 밥먹이는 문제에 대해서만 ‘포퓰리즘’이란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 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에 저런 풍문이 나도는 것일 겁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해명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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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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