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이 가는, 받을 만한 사람들이 저마다 수상 목록들을 장식한 시상식이었습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첫 번째 시상식 KBS 연예대상은 균형과 분배가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도 자신의 해로 만들어버린 일요일 밤의 강자 해피선데이의 강세가 여전했고, 대표 토크쇼인 해피투게더 시즌3의 위치도 굳건했습니다. 영 성적이 오르지 않는 승승장구나, 폐지의 쓸쓸함을 맞이했지만 많은 화제를 만들었던 청춘불패에 대한 배려도 좋았구요.(물론 눈물범벅의 종영을 맞은 천하무적토요일의 배제는 조금 아쉬웠지만 말이죠.) 이젠 유일하게 남은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사람들의 수상 소감은 여전히 감동적이었구요. 크게 부각되지는 않겠지만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위해 헌신했던 김생민과 황수경 아나운서의 수상 역시도 의미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대미를 장식한 대상을 차지한 이경규의 수상에도 불만을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2010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의 성공이 상당부분 박칼린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합창 단원들의 개성에 기댄 것이긴 했고, 연말에 커다란 충격이었던 김성민의 탈락이 프로그램에 상처를 주기는 했지만 한동안 찾지 못했던 1박2일의 파트너로 성장한, 해피선데이의 한축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남자의 자격 아저씨들의 리더는 분명 존중받아야 할 성과를 보여주었으니까요.

게다가 2010년 KBS 예능 프로그램의 간판은 여전히 1박2일이었지만 강호동에게 또 다시 대상을 안겨주기에는 연속수상의 부담도 상당했고 최고 앤터테이너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은지원, 이승기와 이수근에게 안겨주면서 균형을 맞추기도 했구요. 평일 예능의 강자 해피투게더 역시 이날 시상식에서 악동역할로 재미를 안겨주었던 박명수를 중심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명한 균형 잡기의 덕을 말하기 이전에 이경규의 대상 수상은 그의 말처럼 이 외롭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가는 선배에 대한 마땅한 예우이자 본받을 만한 노력에 대한 대가입니다. 이제 그가 개척해나가는 길은 언젠가는 그의 후배들이 다시 따라가게 될 본보기이기에 무척이나 소중한 수상이에요.

하지만 이런 예상했던 결과에도 조금은 아쉬운, 안타까운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최우수상의 수상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도 약간은 기대했었던 역전의 드라마. 올해도 결국 최우수상 수상에 그친 개그콘서트의 버팀목. 김병만의 대상 수상 좌절이 바로 그것이죠. 아무리 잘나가는 코너라고 해도 매달 새롭게 폐지되고 신설되는 잔혹한 무대인 개콘에서 무려 3년간 자리를 지켜온 꾸준함과 성실함.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고집하며 그 노력으로 추석 특집의 최고 자리를 지키기도 한 김병만의 존재감은 결코 다른 경쟁자들에게 뒤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제 김병만은 단순히 개인의 이름만이 아닌 하나의 상징. 열악한 환경, 점점 줄어드는 무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는 공개 코미디의 순수한 열정의 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쉽습니다. 올해 다른 방송사의 연예대상에서는 개그맨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에도 그렇구요. 순간의 재치와 캐릭터가 지배하는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공개 코미디의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기만 하는 위기의 시대에 5분여의 짧은 시간을 위해 일주일을 투자하고 그를 위해 매번 잔인한 아이디어 쥐어짜기를 감수하는 이들의 노력이 김병만을 통해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었거든요.

물론 최우수상도 대단히 소중한 수상입니다. 남들은 근처에도 가기 힘들어하는 자리를 두 번이나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축하를 받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수상 소감에 타방송사 사장님에게 개그맨들의 자리를 마련해주십사, 좀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말하는 그의 간절함을 담은 말은 그 어떤 대상보다도 빛났던 멋진 수상소감이었지만, 그런 말을 할 위치가 대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전 이경규의 건재함을 과시한 당당함도 멋지고 훌륭해보였지만, 몇 번이나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장의 부활 소감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달인 김병만이 대상 트로피를 들고 그와 고생을 같이했던 이수근과 얼싸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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