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신 연봉제가 스토브 리그를 달구고 있습니다. 신인급 선수의 억대 연봉으로의 인상 방침과 미미한 활약을 보인 고참 선수들의 대폭 삭감이 화제입니다. 하지만 개별 선수들의 인상과 삭감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LG 신연봉제에 숨겨져 있지만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8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로 8개 구단 중 가장 오랫동안 가을 야구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LG가 신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 것은 바로 ‘팀 승리 기여도’를 대폭 중시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년 간 부진했던 팀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수 개개인의 기록보다는 팀 승리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신 연봉제는 팀이 많은 승리를 거둘수록 선수단 전체의 연봉이 상승한다는 점에서 얼핏 타당한 제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LG의 신 연봉제는 최강 팀조차 한 시즌 동안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경기는 패배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선발 투수가 등판해 초반 대량실점하며 강판될 경우 LG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패배할 경기에서 최선을 다 해봤자 연봉 고과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한 시즌 133경기 중 약 1/3에 해당하는 40여 경기는 고과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한 시즌에 최소 1/3은 패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충 던지고 대충 휘두르고 대충 수비해서 실책을 범해도 고과에 반영되는 비율이 미미하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리그 최다 실책을 범하고도 승리한 경기에서의 기여도가 크다는 이유로 대폭 연봉 상승을 보장받은 모 선수를 보며 내년 시즌 LG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라운드에 나설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도 빨리 경기를 마치고 싶은 심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LG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 신 연봉제로 인해 LG 팬들은 2011 시즌 위와 같은 참패를 보다 자주 관전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5월 1일 문학 SK전 종료 후 전광판.

초반 대량 실점을 하더라도 9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아무리 초반에 많은 점수를 내줘도 중반 이후에 반격하며 짜릿한 대역전극을 연출하는 경기 또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시간제한 없는 야구의 매력입니다. 그러나 초반 대량 실점했다는 이유로 고과에 반영되지 않아 느슨한 플레이를 한다면 더 많은 점수를 내줄 것이고 중후반 역전은 요원할 것입니다.

주전 선수들이 느슨한 경기를 하면 주전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후보 선수들을 교체 투입하여 연봉 고과 혜택은 받지 못해도 감독의 눈에 들 기회를 부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수의 경우 교체 출전하여 감독의 눈에 들면 곧바로 다음 날 선발 출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투수의 경우 선발 로테이션이나 필승 계투조에 포함되지 못한 1.5군급 선수들이 초반에 선발 투수가 무너진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호투해도 고과에도 반영되지 못하고 며칠 동안 등판할 수 없기에 순전히 헛심만 쓴 꼴이 됩니다. 그 투수가 다른 투수들이 승리하는 경기에 등판할 수 있도록 아끼고 자신을 희생하며 궁극적으로 팀 승리에 기여한 사실은 신 연봉제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패할 수밖에 없는 경기가 한 시즌 동안의 1/3에 해당한다면, 어떻게 패배하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끝까지 상대 팀을 괴롭히며 물고 늘어지지 않고 손쉽게 승리를 헌납하면, 상대 팀은 필승 계투조를 아끼고 주전 야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며 다음 날 경기에 LG를 상대로 더욱 좋은 경기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어제 쉽게 패한 LG는 전력을 비축한 상대에 맞서 오늘도 패하며 연패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쉽게 패하는 팀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신 연봉제로 인해 LG가 쉽게 패하는 경기가 늘어난다면 비싼 돈을 내고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귀중한 시간을 들여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는 팬들이 느낄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패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납득할 만한 플레이를 보고 싶은 것이 팬들의 바람입니다.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선전이야말로 프로야구 선수의 팬들에 대한 의무와 예의입니다. 하지만 팬들은 2011년 LG에 짜릿한 역전극은커녕 최선을 다하는 경기조차 요구하기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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