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이 끝났다. 인기도 높았지만 이처럼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도 많았다. 방영 전에는 권상우의 음주 뺑소니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고 그 때문에 미실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운 말이 미운 말을 이긴 예는 없는 탓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마치 이 드라마 복선이나 됐던 것처럼 결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물론 상황은 역전됐지만 결과적으로 음주에 뺑소니로 국민 밉상에 등극했던 권상우는 하도야 검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밉상에서도 교묘하게 탈출하게 됐다.

반면 적어도 4회까지는 갑갑한 국민의 정서를 대신 말해주는 대변인 역할로 기대를 모았던 고현정은 겉으로는 대한민국 초대 여성 대통령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아나운서면서 정부에 대해서 대놓고 비판해대는 그 속 시원한 일갈의 캐릭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작가와 PD가 바뀌는 혼란 속에서 고현정이 촬영을 한 때 거부했다는 기사도 있었지만 그 책임은 고현정이 아닌 제작 환경에 있다.

배우란 감성의 직업이다. 한번 그 감정이 깨지거나 흐트러지면 좀처럼 정상 회복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 반면 한번 상승무드를 타면 걷잡을 수 없는 미친 연기력이 쏟아지기도 한다. 물론 그런 모든 것을 최하치, 최고치 없이 그야말로 연기력으로 커버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지만 고현정이란 배우에게 기대되는 것은 후자는 아무래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고현정이라는 배우의 인생이 너무도 강렬한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일지 모르겠지만 대물을 지켜보면서 때때로 고현정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그런 생각이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좀 의외인 고현정 연기논란도 크지는 않게 일기도 했다. 그렇다고 시쳇말로 발연기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아마 고현정 본인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의 주범은 고현정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 과정에 대해서 친절하고 자상하게 기억해주지 않는다. 다만 대물의 수혜자는 권상우일 뿐이고, 미실 고현정은 권상우를 위한 들러리 정도밖에 서질 못했다. 누가 봐도 고현정이 원톱인 드라마에서 선두가 뒤집혔다. 고현정으로서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권상우를 적어도 연기자라는 측면에서는 칭찬해줄 만한 대목이다. 사실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국민밉상이라는 딱지까지 붙이고 연기에 몰입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고현정에게 위기는 드라마가 시작되고 찾아왔지만 권상우는 그 전에 이미 위기를 안고 시작한 것이었다. 고현정은 결과적으로 드라마 외적인 요인에 지고 말았거나 스스로 반쯤 포기한 것이라면 권상우는 이 악물고 그야말로 죽자 사자 매달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작가와 PD가 바뀌는 상황에서 서혜림의 캐릭터는 변했지만 하도야의 캐릭터는 오히려 발전했다. 겉으로는 서혜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만 그런 외양의 화려함보다 비리 정치인들을 악착같이 추적하는 정의감 넘치는 검사라는 실리가 더 컸다.

고현정의 자신의 캐릭터를 드라마 도중에 변화하는 것에 불만일 수밖에 없지만 하도야는 극중 아버지의 죽음까지 대물의 모든 역량은 하도야에게 핀라이트를 맞추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어쨌든 대물은 끝났다. 그리고 그보다 한참 전에 권상우 음주 뺑소니 사건도 사고 후 미처리로 처리됐다. 법적으로는 그렇지만 아직도 그 사건은 권상우 본인의 사과와 반성은 미처리 상태로 보아야 한다. 권상우는 분명 대물을 통해서 해피해진 사람이다. 그 해피엔딩의 화룡점정은 미처리된 권상우 본인의 사과와 반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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