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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이 유치했던 이유[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0.12.24 08:53

고현정의 드라마 <대물>이 끝났다. 이 작품은 초반엔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중반부 이후엔 맥이 빠져버렸다. 고현정이 최후까지 찬사를 받았던 <선덕여왕>과는 달랐던 것이다. 여기엔 캐릭터의 카리스마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작품의 구도가 유치했던 것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먼저 캐릭터의 카리스마라는 건 이런 얘기다. <대물>에서 고현정은 초반에 강렬한 느낌을 줬지만, 정치에 입문한 이후엔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정치 초보에서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어리버리한 모습은 캐릭터의 힘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차츰 성장하는 과정이 밀도 있게 그려졌다면 시청자가 그 성장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었겠지만, <대물>은 ‘착한 마음으로 하다 보니 결국 복을 받았어요’ 정도의 이야기밖에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맥이 빠질 대로 빠졌다. 마치 학력고사 1등을 한 학생이 ‘잠은 충분히 자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전개였던 것이다.

구도가 유치했다는 건 이런 얘기다. <선덕여왕>이 수준 높은 정치사극이라는 평을 들었던 건 기본적으로 선 대 선의 대립이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선 덕만이 무조건 선이고 미실이 무조건 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미실은 신라를 지금까지 지켜온 건 성골왕족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국경에 있는 일선 지휘관들은 미실을 충심으로 따랐다. 미실과 덕만이 마지막으로 대결할 때 국경 장수가 병력을 돌려 미실을 도우려 왔었다. 그 병력만 오면 미실이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실은 그 장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국방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그가 신라를 무시하자 미실은 그를 매섭게 질책했다. 그가 자신의 뒷배가 돼줄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신라의 자존심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으로 <선덕여왕>은 미실도 신라를 생각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덕만도 신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그럼 미실도 신라를 생각하고 덕만도 신라를 생각하는데 어떡해야 하나? 둘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것인가?

   
   
그런 게 아니다. 친목회와 국가 정치는 이 대목에서 갈린다. 아무리 충심으로 국가와 백성을 생각한다 해도 그 방법론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덕만은 통일전쟁을 하자고 했고 미실은 반대했다. 덕만은 정보를 공개하자고 했고 미실은 독점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은 가야유민에게 땅을 나눠주려고 했고 미실은 그들은 노예적 상태로 부리는 게 국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바로 이런 게 어른들의 세계다. 반면에 <대물>에서 서혜림은 모두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서로 싸울 일이 없을 텐데 뭐하러 싸우냐고 했다. 이건 유치원 수준의 생각이다. 서혜림은 정치집단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에 대립이 발생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대립이 발생하지 않을까?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세계관, 이념, 사고방식,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극단적 대립이 발생한다. 한 집단은 이것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집단은 그것이 나라를 말아먹을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 어떻게 사이좋게 지낸단 말인가?

<대물>은 정치를 극히 단순한 선악구도로만 파악했다. 부패와 청렴이 맞서고 범죄와 선량함이 맞섰다. 나쁜 놈을 물리치고, 착한 마음으로 국민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이었다.

실제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착한 마음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도 얼마든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수 있다. 때로는 착하지도 않고 사리사욕도 챙기는 지도자가 능률적인 지휘로 백성을 잘 살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정치다.

이렇게 복잡한 정치를 너무나 단순한 선악구도로 도식화했기 때문에 유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면 대립구도에 힘이 생길 수 없다. <선덕여왕>보다도 퇴보한 구도였다. 악 대 악의 구도였던 <하얀거탑>보다도 못하다.

‘착한 마음을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돼요. 모두모두 싸우지 말고 화합해요.’식의 정치드라마는 이제 안 나왔으면 좋겠다. 시청자도 맥 빠지고 우리 드라마의 수준도 뒷걸음질친다. 보다 박진감 넘치는 정치드라마를 기대한다.

문화평론가, 블로그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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