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조현숙 아주머니
대학가의 마지막 목로주점, 서울 신촌의 ‘훼드라’ 주인 아주머니 조현숙씨가 73살을 일기로 17일 돌아가셨다. 휴일인 18일 송영길 인천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연세대 동문들이 세브란스 장례식장을 지켰다. 서울대 앞 신림동의 ‘녹두’, 고려대 앞 ‘이모집’, 이대 앞 ‘목마름’처럼 훼드라는 연세대를 대표하는 이른바 ‘운동권 술집’이었다.

1980~90년대 훼드라에서 우리가 토론했던 그 수많은 밤들을 기억한다. 신촌 사거리 대형 백화점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주점, 막걸리 한 사발에 탁자를 두드리며 불렀던 노래들, 그 분노와 탄식의 밤들, 거리에 나섰다 친구를 잡혀 보내고 돌아와 들이켜던 눈물의 막걸리. 화장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오바이트’(구토)라도 하면 누군지 모르면서도 서로 등을 두드려주던 훈훈한 겨울도 잊을 수 없다.

73년부터 그 자리에서 개업을 한 아주머니는 그 무수한 밤들을 함께했던 연인이자 동지였으며,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린 손님들의 공판정을 찾아주었으며, 어쩌면 그들이 지불했을 술값보다 더 많은 돈을 영치금으로 내놓곤 하셨다.

수배 학생들이 밤에 몰래 와서 밥이며 라면이며 먹고 가라고 술집 문은 늘 열어두셨고, 그래서 감옥을 나온 학생들은 제일 먼저 훼드라를 찾아갔으며, 아주머니는 두부를 내놓으며 기꺼이 눈물을 흘려주었다. 87년 6월 한열이를 떠나보내는 날 노제 음식도 손수 만들어주셨다.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신촌을 떠나갔지만 40여년간 아주머니는 그 거리를 지켰다. 대학가 주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을 때도 ‘훼드라마저 없으면 신촌이 뭐가 되겠어요? 힘들어도 내가 지켜야지요’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 훼드라 없는 신촌은 적막할 것이다. 아주머니가 없는 그 골목은 이제 더 어두워질 것이다. 요즘은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입구에 앉아 멍하니 연세대 쪽을 바라보시던 아주머니의 쓸쓸한 뒷모습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우리는 돌아갈 친정을 잃은 셈이다.

우리 생애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목격자이자 유력한 증인을 떠나보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외롭게 훼드라를 지키던 아주머니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치기 어린 우리 20대의 서약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미더워하셨던 아주머니, 그는 자주 그런 이야기를 했다. 훼드라를 거쳐간 사람들만이라도 올바르게 살아주면 자기는 정말 잘 살아온 것이라고.

20대 손님으로 만났던 그들이 40, 50대가 되어 다시 장례식장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를 잃은 2010년 겨울, 좋은 세상을 만들자던 당시 ‘훼드라의 결의’가 우리들 속에 계속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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