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5·18은 폭동이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5·18은 폭동이 아닌 학살이었다. 국가 권력을 손에 쥐려는 쿠데타 세력의 잔혹한 폭력이었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사망자 240명, 행방불명 409명, 상이 1,628명 등이다. 그러나 아직도 찾지 못한 희생자가 많으며, 그것은 아직도 5·18은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은 미완의 역사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숙제 많은 5·18에 난데없는 훼방꾼이 생겼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의 등장이다. 그들은 심지어 국회까지 침투해 온갖 망언을 일삼기도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노래인 ‘오월의 노래 2’ 가사는 그날의 참혹함을 전해준다. “왜 쏘앗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이 노래는 프랑스 가수 미셸 폴라레프의 곡에 가사를 입혔다. 가사가 담고 있는 그날의 참혹함이 너무도 생생하다. 이 노래 가사는 “예술은 사실”이라는 명제의 근거가 된다. 아직도 이 노래를 들으면 공포가 생물처럼 만져진다.

그런 희생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깊이 역사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5·18은 6월 항쟁과 더불어 20세기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또 하나의 국가폭력 제주 4·3과 마찬가지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개입을 덧씌우려는 의도들이 존재한다.

KBS 1TV <거리의 만찬> 26회 ‘광수를 찾습니다’ 편

국가폭력을 숨기고 역사를 부정하려는 색깔론. 이쯤에서 독일의 홀로코스트법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이 법이 독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홀로코스트법을 제정해 역사 왜곡을 막고 있다. 역사 왜곡은 범죄라는 의미다.

KBS <거리의 만찬>이 그곳 광주를 찾았다. <거리의 만찬>이 만난 사람들은 ‘광수’들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5·18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극우논객 지만원이 주장하는 “광주에 온 북한군 특수부대”를 줄여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광수’이다. 그들 중에는 현재 북한 고위급이 된 인물들도 즐비하다. 북한국 개입설을 주장하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다. 당연히 지만원이 만들어낸 ‘광수’들은 없다.

이날 <거리의 만찬>에 출연한 5·18 유공자 두 사람도 자신을 “몇 호 광수”라는 소개를 덧붙였다. 5·18 유공자라는 자랑스러운 훈장 대신에 ‘광수’라는 왜곡된 낙인을 언급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정도다. 가족이 죽고, 다치고, 사라진 아픈 기억 위로 또 다른 폭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참담한 것은 악의적인 왜곡을 일삼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5·18 왜곡처벌법’이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 통과될지는 알 수 없다. 아니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자유한국당이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올 2월 5·18망언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면서 해당 의원들의 징계를 약속했지만 부도난 수표였다. 자유한국당이 거대당으로 버티는 한 ‘5·18 왜곡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KBS 1TV <거리의 만찬> 26회 ‘광수를 찾습니다’ 편

결국 또 믿을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 정치인들이, 극우파들이 5·18을 왜곡하고 능욕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5·18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알더라도 기억에서 희미해진 때문이다. 또한 하루도 편한 날 없이 넘쳐나는 뉴스거리에 일반의 관심이 5·18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거리의 만찬>이 광주의 ‘광수’들을 만난다는 소식이 더 없이 반가웠다. 방관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읽혀졌다.

<거리의 만찬>이 방송의 소명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우공이산이라고 했다. ‘광수’도 모르고, ‘5·18 왜곡처벌법’도 잊고 사는 우리에게 <거리의 만찬>의 식탁에 오른 주먹밥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보였다. 시민군이 탄 트럭 위로 수도 없이 전해졌던 그 주먹밥이었다. 39년이 지나도 아직도 싸워야 하는 광주의 슬픈 운명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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