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항상 한쪽 시력을 잃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표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또 실력은 뛰어나면서도 다른 선수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2인자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선수와 다를 바 없는, 신체적으로 평범한 선수로서 뭔가를 보여주기를 갈망했던 그의 욕망, 그리고 열정은 결코 사그러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1인자로 올라섰습니다. 팀이 아쉽게 우승에 실패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며 가장 인상적인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데뷔 후 10여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샤프'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사나이, 바로 김은중(제주 유나이티드)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김은중이 2010 K-리그에서 가장 빛난 선수로 뽑혔습니다. 김은중은 20일 열린 2010 쏘나타 K-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생애 첫 이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준우승 팀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지난 1999년 안정환 이후 11년 만의 일이며, 득점상이나 도움왕을 차지한 것이 아님에도 MVP를 타는 쾌거를 이루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은중의 K-리그 개인사를 놓고 보면 참 파란만장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데뷔하면서 대전 시티즌의 대표 공격수이자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지만 이동국, 안정환 등 함께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서울로 이적하면서 김은중은 더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2005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박주영을 비롯해 데얀, 정조국 등 신진 선수들이 잇달아 등장해 급기야 2008년에는 벤치로 밀리는 신세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바랐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중국으로 눈을 돌려 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때 김은중에게 돌아온 축구팬들의 말은 "이제 한물갔다", "끝났다"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은중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시 K-리그에 돌아온 김은중은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새둥지를 튼 제주에서 뭔가를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묵묵히 몸을 만들고, 훈련에 임했습니다. 솔선수범의 자세로 자신을 다지면서 뭔가 스스로 발전하는 느낌을 받은 김은중은 그렇게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많은 활약을 펼친 김은중에게 K-리그 감독이나 선수, 기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그는 팀으로 시상식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도 개인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준우승팀에서 나왔다 해도 충분히 받을 가치가 있었다고 할 만큼 김은중의 2010년은 그렇게 빛났습니다.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은중은 시상식 소감에서 "서른이 넘어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자신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이동국과 안정환이 30대에 접어들어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얼마 전까지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던 만큼 자신도 30대의 나이에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높은 꿈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펼칠지도 모릅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며 가장 돋보이는 선수로 떠오른 김은중의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공격수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신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샤프' 김은중을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많은 축구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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