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항상 한쪽 시력을 잃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표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또 실력은 뛰어나면서도 다른 선수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2인자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선수와 다를 바 없는, 신체적으로 평범한 선수로서 뭔가를 보여주기를 갈망했던 그의 욕망, 그리고 열정은 결코 사그러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1인자로 올라섰습니다. 팀이 아쉽게 우승에 실패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며 가장 인상적인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데뷔 후 10여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샤프'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사나이, 바로 김은중(제주 유나이티드)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김은중이 2010 K-리그에서 가장 빛난 선수로 뽑혔습니다. 김은중은 20일 열린 2010 쏘나타 K-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생애 첫 이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준우승 팀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지난 1999년 안정환 이후 11년 만의 일이며, 득점상이나 도움왕을 차지한 것이 아님에도 MVP를 타는 쾌거를 이루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K리그 MVP 김은중 ⓒ연합뉴스
올 시즌 김은중의 활약은 K-리그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정규리그, 컵대회 등 모두 34경기에 출전해 17골-11도움을 기록한 김은중은 정규리그만 놓고 보면 13골-10도움으로 23개의 공격포인트를 내며 전북의 에닝요와 함께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린 선수로 기록됐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팀의 주장으로서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리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제주의 사상 첫 결승 진출, 그리고 준우승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제주 돌풍에는 김은중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김은중은 올 시즌 K-리그에서 보이는 곳,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팀도 구하고, 자신도 가장 돋보이는 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김은중의 K-리그 개인사를 놓고 보면 참 파란만장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데뷔하면서 대전 시티즌의 대표 공격수이자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지만 이동국, 안정환 등 함께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서울로 이적하면서 김은중은 더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2005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박주영을 비롯해 데얀, 정조국 등 신진 선수들이 잇달아 등장해 급기야 2008년에는 벤치로 밀리는 신세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바랐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중국으로 눈을 돌려 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때 김은중에게 돌아온 축구팬들의 말은 "이제 한물갔다", "끝났다"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은중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시 K-리그에 돌아온 김은중은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새둥지를 튼 제주에서 뭔가를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묵묵히 몸을 만들고, 훈련에 임했습니다. 솔선수범의 자세로 자신을 다지면서 뭔가 스스로 발전하는 느낌을 받은 김은중은 그렇게 다시 일어섰습니다.

▲ 프로축구 제주FC와 경남FC의 경기에서 제주 FC의 김은중이 패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중이 살아나자 그동안 K-리그에서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었던 제주 축구도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사상 처음으로 1위를 밟아보는 쾌거까지 이루더니 결국에는 첫 준우승이라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은중은 팀 공격을 이끈 것뿐 아니라 팀 전체를 하나로 묶는 데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해내며 강팀으로 떠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특히 김은중은 자신의 전 소속팀 서울과 현 소속팀 제주 선수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중간에서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며 중재에 나서는 등 팀뿐 아니라 상대팀에도 모범적인 선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많은 활약을 펼친 김은중에게 K-리그 감독이나 선수, 기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그는 팀으로 시상식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도 개인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준우승팀에서 나왔다 해도 충분히 받을 가치가 있었다고 할 만큼 김은중의 2010년은 그렇게 빛났습니다.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은중은 시상식 소감에서 "서른이 넘어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자신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이동국과 안정환이 30대에 접어들어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얼마 전까지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던 만큼 자신도 30대의 나이에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높은 꿈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펼칠지도 모릅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며 가장 돋보이는 선수로 떠오른 김은중의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공격수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신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샤프' 김은중을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많은 축구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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