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얼마 전 올림픽담당상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 복구보다 정치인이 더 중요하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국토교통성 부대신도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를 위해 손타쿠했다”고 했다가 경질됐다. 손타쿠란 윗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행동한다는 의미다. 그쪽 나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듣기에도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잇단 망언 자충수에…자민당 '실언 방지 매뉴얼' 제작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사태가 그렇게 되자 일본 자민당은 당원들을 상대로 ‘실언방지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한다. JTBC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일본 정치의 문제점을 그대로 알 수 있다. 동시에 일본 것인지 한국 것인지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매뉴얼에는 ‘강한 표현’을 주의해야 한다, 사고나 재해에서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발언은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위험한 표현’도 주변에서 동조한다고 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하나 같이 우리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저 웃지만도 못할 상황이다.

자민당의 ‘실언방지 매뉴얼’이라는 것이 모두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하지 말라는 것에 불과하다.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언어 변별도 소위 꼴통보수가 아니라면 요즘은 누구나 조심하는 분위기다. 이런 것을 굳이 매뉴얼까지 만들어 배포해야 할 정도면 그들 정치의 수준은 보나마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잇단 망언 자충수에…자민당 '실언 방지 매뉴얼' 제작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실언방지 매뉴얼이 필요할 정도의 일본정치. 우리는 그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5·18망언, 세월호 망언, 청와대 폭파 망언, 대통령 지지자에 대한 달창 망언 등등 일본 자민당이 오히려 “형님”할 판이다. 막말과 망언이 판치는 것이 작금의 자유한국당 정치의 본질이 됐다. 자유한국당이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강하게 나가는 이유는 물론 내년 총선 때문이다.

사회에서 망언이고 막말이라고 지탄을 받으면서도 그 기세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망언사태에 대한 ‘다른 기대’가 있는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다. 망언의 충격은 크지만 세월이 지나면 망언은 잊히고 사람만 기억된다. 소위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이다. 그러나 노이즈 마케팅의 핵심은 망언이 잊혀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잊히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는다면? 노이즈 마케팅은 실패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매우 흔히 사용되는 ‘박제’라는 용어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그대로 수집해 보관한다는 의미다. 하드디스크만이 아니라 클라우드도 있어 박제는 빠르고 손쉽다. 그리고 박제로 그치지 않는다. 필요한 때가 되면 반드시 박제된 사실이 살아 움직인다. 노이즈 마케팅이 쉽지 않은 이유다. 이슈는 덮일 수 있고 지나갈 수 있지만, 사실은 사라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박제’ 문화이다.

"모르고 쓴 표현" 3시간 만에 사과…"진정성 없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의 발언 수위를 높이는 이유가 소위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이라고 한다. 자유한국당의 막말에 열렬히 환호하는 부류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고무된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국민이 막말하는 정치인과 그 정당에 표를 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그렇다고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유한 자유한국당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일도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총선 대승을 기대한다는 것은 과한 욕망이 아니겠는가. ‘망언’으로 표를 모으겠다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오해이고 모독이다.

그렇다면 일본 자민당의 ‘실언방지 매뉴얼’은 자유한국당에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의 이런 조치는 정치인들의 입단속 효과와 함께, 노력하겠다는 일종의 민심 달래기용의 성격도 없지 않다. 최소한 여론을 두려워하는 일단을 보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누군가 좀 배워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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