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의 평가전에 첫 선을 보인 그를 크게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빼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도, 화려한 용모를 자랑한 선수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나 봅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훗날 한국 축구의 '화려한 10년'의 역사를 함께 하고 이를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의 환상적인 골로 16강행을 견인한 것을 비롯해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고 하는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더니 이제는 한국 축구에서 그의 이름을 빼놓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상대팀 감독, 선수들이 한국 선수에 대해 언급을 하면 '몇 번 선수가 잘 하더라' 같은 식으로 등번호만 이야기하던 것에서 벗어나 당당히 이름을 기억하고 언급되는 존재가 된 바로 이 선수는 우리의 '캡틴박' 박지성입니다.
그런 박지성이 정말로 다음 달 열리는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16일, 국가대표 훈련이 열리고 있는 제주에서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를 이야기하면서 "은퇴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해 지난 남아공월드컵 때 말했던 은퇴 의사를 분명히 함을 밝혔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만류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서 일단 박지성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해 어쩌면 이번 아시안컵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대회가 될지도 모르게 됐습니다.
박지성은 그야말로 한국 축구의 10년을 이끌어온 영웅입니다. 2002, 2006, 2010년 월드컵에서 연달아 골을 뽑아내 아시아 최초로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던 박지성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아시아의 클래스를 넘어선 선수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의 활약 덕에 2002년 월드컵에는 아시아 첫 4강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고, 2006년 월드컵에는 본선 첫 승, 그리고 2010년 월드컵에는 본선 첫 16강 진출이라는 위업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뿐 아니라 클럽 축구에서도 일찌감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PSV 에인트호벤에 진출해 초반 역경을 딛고 주전자리를 꿰차면서 맹활약, 마침내 진출 3년 뒤에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 팀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유니폼 판매원'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박지성은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고, 2005-06 시즌 이후 여섯 시즌동안 꾸준하게 맨유의 중요 멤버로 활약하다 현재는 당당히 주전 자리도 꿰차고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릎 수술 등 상당한 시련도 있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완벽한 자기 관리로 큰 흐트러짐 없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며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결승전까지 경기를 치른다면 박지성은 A매치를 딱 100경기 소화하게 됩니다. 현재 A매치 94경기를 뛴 박지성은 조별 예선 3경기와 8강, 4강, 결승전 토너먼트 3경기를 더 하면 최대 6경기를 아시안컵에서 치르게 돼 이번 아시안컵 무대가 센추리 클럽 가입이라는 개인적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아시아 정상에 서고 싶다'면서 아시안컵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 바 있던 박지성은 개인적인 쾌거뿐 아니라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에 또 한 번 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내며 '화려한 국가대표 말년'을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숱한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당당하게 일어서 한국 축구 최고 선수가 된 그의 '국가대표 마지막'이 정말로 화려하게, 드라마틱하게 마무리되고 '또 다른 시작'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 축구인들이나 축구팬들 모두 하나 같을 것입니다.
'캡틴'으로서 또 국가대표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의식을 갖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박지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무거운 마음, 그리고 다부진 각오로 이번 아시안컵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런 박지성의 또 다른 당당한 도전에 많은 축구팬들은 큰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는 박지성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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