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한 시간 반가량 인터뷰를 진행한 송현정 기자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감정의 격앙은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종일 포털 검색어 상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던 송현정 기자의 이름은 이틀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그만큼 뜨거웠던 논란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경청의 자세 없는 대담자의 태도였다.

신문기자 출신인 이낙연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저는 신문사에서 인턴기자 교육담담으로 여러 해 일했습니다. 그 첫 시간에 저는 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자들은 ‘물을 문’자로 잘못 아십니다. 근사하게 묻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잘 듣는 일이 먼저입니다. 동사로서의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 송현정 KBS 정치 전문기자

송현정 기자 논란 속에서 제기된 지적들 중에는 송 기자 개인이 아니라 그를 인터뷰어로 내세운 KBS의 문제라는 말들도 적지 않았다. 애초 누가 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대담은 듣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묻고자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뒤늦은 아쉬움이지만 이번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담 제목 “대통령에게 묻는다”는 그래서 “대통령에게 듣는다”였어야 했다.

전 한화증권 주진형 사장도 이 논란에 가세했다. 그의 페이스북 글 제목은 “KBS엔 왜 손석희가 없나?”였다. 장문의 글은 점잖지만 어떤 언론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던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논란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KBS를 조소했다. 그는 “KBS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원과 인력을 보유한 방송사다. 그러나 그들은 손석희만 한 사람 하나를 길러내 본 적이 없다. 반성할 일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여기까지는 매우 침착하고 점잖은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 전우용 씨의 비판은 신랄했다. “권위 앞에 위축되지 않은 기자정신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칭찬하는 다른 기자들을 보면, 안 때리는 선생님에게만 개기던 고등학교 양아치가 떠올라 기분이 영 씁쓸합니다”라고 꼬집었다.

역사학자 전우용 SNS

논란이 일자 일부 언론에서는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을 전했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난리냐는 말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변명일 뿐이다. 그럼 일국의 대통령이 인터뷰를 한 후에 공식적으로 불쾌했다고 말을 하겠는가.

아니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진심으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인터뷰는 장시간 말하고 방송에 겨우 십 여초 나오는 인서트용이 아니라 전체가 방송을 탄 것이다. 인터뷰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시청자들 역시 당사자이다. 그런데 그 방송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은 불편함을 넘어 분개할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의 반응은 아니라던데? 하는 것은 적절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시청자와 독자는 언론의 소비자이다. 설혹 송현정 기자의 잘못이 전혀 없었더라고 하더라도 시청자가 분노한 상황이라면 문제의식은 가져야만 한다. 기자가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최승호 MBC 사장의 어록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질문만 하고 끝나면 기자가 아니다. 그다음에는 대상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좋은 취재는 잘 묻고 또 잘 들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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