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이 또 한번 소중한 선행으로 연말을 따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려 10억 원. 그동안 그가 지속적으로 해온 반크의 독도 수호운동과 카이스트의 과학 인재 육성을 비롯해 총 7개 단체에게 기부 의사를 밝혔고 오는 20일 이 금액을 전달하려 한다는 소식이죠. 자신의 명의로 된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이 남자의 선행은 분명 대중들의 사랑, 그리고 이 미덕에 동참하려는 아름다운 마음들로 보상받을 겁니다. 그는 이 나라의 그 어떤 연예인들보다도 훨씬 더 팬들의 사랑이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명성과 부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늘 고민하며 그 고마운 마음을 그대로 다시 돌려주는 겸손함을 가진 멋진 사나이입니다.

반응은 여러 가지입니다. 연예인들의 각종 행사의 수입이 높은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정적인 방송 출연도 하지 않은 그가 기부하는 금액에 대한 놀라움. 근래 들어 수십억을 호가하는 건물을 구입한 몇몇 연예인들과의 비교와 눈총. 연평도 사태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선행을 베푼 김제동이나 안선영처럼 늘 기부하는 사람만 선행을 하는 현실에 대한 감탄과 다른 이들에 대한 힐난 등등이 그것이죠. 하지만 제게 가장 인상 깊고 안타까웠던 부분은 기부 발표를 하며 같이 알려졌건 김장훈의 분노와 한탄, 그 정당하고 속상한 심정의 토로였어요.

그동안 꾸준히 기부했던 특정 재단이 불미스러운 부정과 횡령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중한 마음과 정성이 몇몇 이들의 축재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는커녕 책임회피와 외면으로만 일관하는 공무원들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 방식. 그리고 그럼에도 자신이 기부한 것으로 해택을 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걷어붙이고 속상한 마음을 담아 기부를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죠. 선행이 실망으로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이 남자의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아요.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도 비틀어지고 암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부는 한 개인의 성공과 부의 획득이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 덕분인 것만이 아니라는 겸손함의 표시입니다. 그런 성공이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렇기에 기꺼이 그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서 또 다른 이의 성공과 행복을 지원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죠. 불평등하고 불합리하기만 해 보이는 세상의 삐뚤어짐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주고 힘겨워하는 이들의 짐을 덜어주려는 참으로 소중한 선행입니다.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더더욱 권장되어야 하고 더더욱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죠.

하지만 이런 균형 잡기는 한 개인의 희생이나 헌신이 아닌 국가가, 사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기부의 진정한 의미는 선행을 통해 우리가 모두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 의식의 발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도움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상징성, 그리고 정말로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적이고 빠르게 도와줄 수 있는 적절함에 있습니다. 즉 기부나 선행은 이들 기관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한 빈자리를 채워주는 보조 행위에 불과해요. 아무리 한 기업인이, 유명 연예인이 혼신을 다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상처의 치유와 국가 위상 강화를 위한 노력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와 국회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과 덩치 큰 기관들의 몫이에요.

김장훈이 평생 기부한 금액이 110억 원에 달한다는, 그의 헌신과 신념에 놀라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 금액의 규모는 이번 예산안 날치기로 삭감된 내년도 단 한해의 몇백 억 단위의 복지관련 예산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배려도, 준비도 부족했던 높으신 분들의 착오와 외면으로 아이들의 병원비 부담은 커졌고, 결식아동들의 방학 중 식비지원은 사라져 버렸고, 힘겹게 매학기를 버티고 있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대출 이자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그것뿐인가요. 관련 뉴스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삭감과 폐지된 지원 목록들과 그 금액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김장훈 같은 천사들이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부으며 돕기 위해 달라붙는다고 해도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은 쉽게 밝아질 것 같지 않아요.

현실이 이러니 일부 기부 단체들의 비리, 그리고 그런 것에 눈감고 모른척하는 몇몇 공무원들의 태만이 오히려 상식처럼 보일 수밖에요. 정말로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그것이 당연한 임무인 이들은 정작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도리어 몇몇 연예인들이 그로 인해 생기는 상처들을 감싸주고 마음 아파하는 현실이라니. 오죽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 화를 냈을까. 김장훈의 분노는 우리가 지금의 현실을 향해 느끼고 있는 우울한 감정과 동일합니다. 2010년의 겨울은 갑자기 추워진 오늘 날씨만큼이나 싸늘하고 춥게만 느껴지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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